넉넉한 인심의 비밀
낙동강 범람하던 상습침수 지역
안동댐 생기면서 옥토로 변해
무엇이든 잘 자라 고소득 거둬

 

하회정보화마을은 낙동강을 사이에 두고 세계문화유산인 하회마을과 마주보고 있다. 광덕리 솔숲은 낙동강의 물안개와 어우러지는 신비로운 모습으로 수많은 사진작가들이 찾아오는 명소로 자리 잡았다.  전영호 기자
하회정보화마을은 낙동강을 사이에 두고 세계문화유산인 하회마을과 마주보고 있다. 광덕리 솔숲은 낙동강의 물안개와 어우러지는 신비로운 모습으로 수많은 사진작가들이 찾아오는 명소로 자리 잡았다. 전영호 기자

 

2020 경상북도 마을이야기 – 안동 하회정보화마을

물길을 쉬지 않고 흘렀다. 산을 만나면 돌고 돌아서 새로운 물길을 찾았다. 한번 휘감아 돌때마다 비옥한 토양을 부렸다. 안동 풍천 땅에 접어든 그 물길은 오른편으로 돌면서 넓은 들판을 만들었다. 다시 왼편으로 돌아서면서 또 하나의 들판을 만들었다. 그 곳에 사람들이 찾아들어 땅을 일구고 집을 지어 마을을 이루었다. 그곳은 하회마을이 되고 광디이마을(광덕리)이 되었다. 그리고 그곳만의 특별한 문화를 만들었다. 물길은 두 마을을 휘감아 돌아 태극을 만들었다. 땅도 강을 따라 태극이 되었다. 이를 보고 사람들은 ‘수태극’과 ‘산태극’이 조화를 이루었다고들 했다. 바로 ‘한국 속의 작은 한국’이라는 하회와 광덕리를 두고 하는 말이다.

하회정보화마을이 있는 광덕리의 자연부락 이름은 ‘저우리’다. 광덕의 옛 지명이었던 형호(衡湖)에서 유래했다. 저울 형(衡)자로 마을의 모습이 저울을 닮았다고 해서 ‘저울리’로 부르다가 ‘저우리’로 변했다. 저우리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이야기들이 전해진다. 비가 많으면 홍수가 나고 적으면 가뭄이 들어 농사가 안 되는 마을임으로 비가 저울에 단 것처럼 정확하게 와야 하는 곳이라는 것과 강을 중심으로 ‘하회’와 ‘형호(저우리)’가 저울처럼 균형을 이루고 있다는 이야기다. 류근우 이장은 저울처럼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고 균형을 이루는 중용의 도리를 실천하는 마을이라는 새로운 의미를 담고 싶다고 했다.

정신문화의 수도로 일컬어지는 안동은 유교문화의 전통이 살아있는 고장이지만 변화를 시도하고 있다. 풍천면 광덕리가 그런 곳이다. 정보화마을로 선정되면서 정보화의 길을 걷고 있는 것이다. 농산어촌지역에 초고속 인터넷 환경을 조성하고 정보화 생활을 유도해 실질적인 수익을 창출하고 지역경제 활성화로 연결시키는 사업이다.

하회정보화마을에서는 봄철 딸기수확체험과 사군자그리기 체험(오른쪽), 국궁체험 등 다양한 체험을 통하여 관광객들을 불러 모으고 있다.

 

전 주민이 정보화교육
마을에 초고속 인터넷 환경 조성
NFC 활용 관광 인프라 홍보
온라인 쇼핑몰로 농산물 판매도

하회정보화마을은 2002년 전국에서 8개 마을을 선정한 1차 정보화 시범사업에 선정되었고, 2008년에 농촌테마 체험마을, 2009년에는 태극권역 종합개발사업로 선정되는 성과를 거두었다. 당시 마을에 컴퓨터가 설치되면서 전 주민이 정보화교육을 받았다. 이후 꾸준한 교육을 통하여 NFC(무선 데이터를 주고받는 통신 기술)을 활용해 마을 민박을 홍보하는 수준으로 발전했다. 인터넷 쇼핑몰을 통하여 마을의 농산물을 판매하는 실질적인 성과도 거두고 있다. 또한 봄철 딸기수확체험과 사군자그리기 체험, 국궁체험을 통하여 관광객들을 불러 모으고 있다. 특히 사군자그리기 체험은 디지털체험방식을 채택해 청소년은 물론 외국인까지 참여하고 있다. 고택체험은 격조 높은 선비문화를 알리고, 진정한 휴식의 기회를 제공한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중국 춘추시대 공자가 가장 아꼈던 제자 중의 하나는 노나라의 현인으로 추앙받던 ‘안연’이었다. 공자의 사상을 이어받아 예와 인을 중시했고 덕행이 뛰어나 만인의 존경을 받았으나 30세에 요절했다. 그의 죽음을 슬퍼해 공자가 통곡했다고 전해온다. 광덕리에 ‘퇴계문하의 안연’으로 불리던 학자가 있었다. ‘파산 류중엄(1538~1571)’이다. 서애 류성룡의 5촌 종숙으로 나이가 비슷한 류성룡과 퇴계 문하에서 동문수학했다. 문장과 행실이 뛰어났으나 34세에 요절했다. 그의 재능과 학문을 애석히 여긴 유림들의 뜻에 따라 나라에서 불천위로 제정했다. 불천위는 큰 공훈이 있는 사람을 영원히 사당에 모실 수 있도록 국가에서 허락한 신위를 말한다. 불천위 류중엄은 ‘타양서원’과 ‘분강서원’에 제향 됐다.

광덕리 주민들은 조그마한 시골마을에서 육영사업을 선도했다는 것에 대한 자부심이 대단하다. 마을에 중학교가 없는 것을 안타깝게 여긴 주민들이 뜻을 모아 광덕중학교를 건립했다. 마을 유지들이 ‘문맹을 퇴치하자’라면서 앞장을 서고 풍산 류씨 3개파(겸암파, 서애파, 파산파)에서 적극적으로 도왔다. 이렇게 해 설립된 광덕중학교는 현재 풍천중학교로 맥을 이어가고 있다. 마을 단위에서 이처럼 힘든 육영사업을 시작 할 수 있었던 것은 불천위 류중엄 선생과 같은 유학자의 학풍을 계승해 오고 있는 마을의 전통과 무관하지 않는 것으로 보인다.

마을이야기하회정보화마을-소나무
광덕리 솔숲에서는 와룡처럼 누운 소나무에 시종이 등불을 비춰주면서 길을 안내하는 형상을 만날 수 있다.

 

사진촬영 명소 ‘솔숲’
1만여㎡ 250그루 고고한 자태
낙동강 물안개와 장관 이뤄
자전거 라이더들 휴식처 각광

1만여 ㎡이 이르는 광덕리 솔숲은 사진촬영의 명소다. 이른 아침 낙동강의 물안개와 어우러지면 그 모습이 장관이다. 낙동강 개발사업으로 많이 줄어들었지만 아직도 250여 그루가 고고한 자태를 뽐내고 있다. 자주 범람하던 홍수와 강바람으로부터 마을을 보호하기 위해 조성한 숲이다. 정확한 조성시기는 알 수 없으나 류성룡 선생이 63세에 지었던 시 ‘소나무를 심고’를 볼 때 1600년을 전후하여 심어지기 시작한 것으로 추정한다. 낙동강 자전거 길 라이더들의 휴식 명소로 자리 잡아가고 있다.

광덕리의 들판은 낙동강이 수시로 범람하던 상습침수 지역이었다. 안동댐과 임하댐이 생기면서 옥토로 변했다. 수자원이 풍부하고 사질토양이라 무엇이든 잘 자랐다. 비닐하우스가 들어서고 소득 작물들이 재배되면서 고소득을 올리고 있다. 지금은 ‘마’와 ‘우엉’이 많이 재배된다. 홍수 때마다 낙동강이 부려주고 간 비옥한 토양이 보배로 변했다. 광덕리의 넉넉한 인심은 여기에서 나오는 것일 것이다. 맹자의 ‘항산 항심’이란 말이 떠오른다. 일정한 생산이 있어야 마음이 변하지 않는다 말이다.

지현기기자·홍상철 수필가

 

 

<우리 마을은>

“전통도 지키고 수익도 내고…두토끼 잡죠”, 류근우 하회정보화마을위원장

 

하회정보화마을인터뷰
류근우 위원장

 

“저희 광덕1리(저우리마을)는 낙동강을 사이에 두고 세계문화유산인 하회마을과 마주보고 있는 곳입니다. 7백리 물길이 휘감아 돌면서 하회마을 만들었고 다시 한 번 돌면서 광덕마을을 만들었습니다. 이를 보고 ‘수태극 산태극’이라고 불렀습니다. 절경인 부용대가 있고, 유무형의 전통문화유산이 있습니다. 옥연정사와 겸암정사, 파산정사, 화천서원이 대표적인 시설입니다. 특히 옥연정사는 서애 류성룡 선생이 임진왜란의 전 과정을 종합적이고 객관적으로 서술한 ‘징비록’를 집필한 곳입니다. 마을 옆 낙동강변의 솔숲은 250여 그루의 아름드리 소나무가 저마다의 자태를 뽐내고 있습니다. 낙동강의 물안개와 어우러지는 신비로운 모습은 수많은 사진작가들이 찾아오는 명소로 자리 잡았습니다.” 류근우 위원장(사진)은 하회정보화마을이 아름다운 자연환경과 전통 유교문화까지 골고루 갖춘 특별한 마을이라고 이야기한다.

2002년에 행정자치부로부터 1차 정보화 시범마을로 지정된 후 꾸준하게 마을 주민을 대상으로 정보화교육을 실시한 덕분에 인터넷을 통한 농산물 판매와 NFC를 활용한 민박홍보까지 이어져 주민들에게 실질적인 도움이 되는 단계까지 업그레이드가 되었다.

마을을 찾는 도시민들에게 사군자 그리기와 국궁체험, 농산물 체험 등을 통해 전통문화와 농산물을 홍보하는 효과를 올리고 있기도 하다.

“앞으로는 고유의 전통을 지켜 나가면서도 주민 수익형사업을 추진해 마을에 실질적인 도움이 되는 방향으로 전환해 나갈 계획이다” 면서 “ 아름다운 솔숲에 맥문동을 심고 야간 경관조명을 설치해 아름드리 노송과 보라색 맥문동에 오색찬란한 불빛이 어울리는 환상적인 분위기를 연출할 것”이라고 류 위원장은 밝혔다. 그 밖에도 캐라반 캠핑카를 설치해 비대면 관광수요에 대비할 계획도 세우고 있다. 올해는 우선적으로 3대를 설치하고 계속 확대해 나갈 예정이다. 낙동강 제방에 해바라기와 코스모스 같은 꽃을 심고 백사장을 복원해 사람들이 찾아오고 머무는 마을로 만들어 나가는 그림도 그리고 있다. “이러한 일들이 성과를 거둘 수 있도록 주민들과 뜻을 모으고 소통하는 역할을 저희 ‘정보화센타’가 맡겠습니다. 우리 마을을 많이 찾아 주시기 바랍니다.”

 

<가볼만한 곳>

하회정보화마을가볼만한곳-1
옥연정사

◇옥연정사

옥연정사는 서애 류성룡 선생이 1586년 노년에 조용히 지내면서 학문에 정진할 목적으로 하회마을 건너편 광덕리에 건립했다. 사당이 있는 일반 종택과는 달리 학문과 만남을 위한 공간이라고 할 수 있다. 세심재와 원락재, 완심재로 구성되어 있다. 청빈한 생활로 집을 지을 자금을 마련하지 못하고 있던 중 ‘탄홍’스님의 도움을 받아 10년 만에 완공했다. 선생은 ‘옥연서당기’에서 ‘중년에 벼슬길에 나가 명예와 이욕을 다투는 마당에서 20년을 지내면서도 이곳의 무성한 숲과 우거진 덤불의 즐거움을 잊지 않았다’고 애정을 표현했다. 현재는 16대손인 류승환씨가 관리하면서 고택체험을 진행하고 있다.

임진왜란의 전 과정을 기록한 징비록은 원락재에서 탄생했다. 당시 영의정이면서 도체찰사(전시의 최고 군직)를 겸임하고 있어서 전쟁의 전 과정은 물론 전쟁 전후의 상황까지도 알 수 있는 위치에 있었다. 자신이 직접 겪고 정책결정에 참여했던 상황들을 기록했기 때문에 어느 기록보다도 상세하고 객관적인 기록물로 평가 받는다. 전쟁 초기 조선군의 실상과 선조의 몽진, 신하들의 행태, 장수의 능력, 의병활동, 백성들의 참상까지 세세하게 기록했다. 패전과 치욕 등 부끄러운 사실까지 모두 기록함으로써 다시는 그러한 아픔을 되풀이하지 않도록 경계하는 의미를 담고 있다. 당시는 물론 오늘날에도 국가안보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교훈적 의미가 있다고 할 수 있다. 국보 132호로 지정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