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천 누에치는 마을
30여가구 남짓 작은 산골마을
조선시대부터 양잠업 명맥 이어
1990년대 초 누에농가 위기 때
‘입는 누에’서 ‘먹는 누에’로 전환
전통식품 전시·가공·판매 등
6차산업 성공 모델로 거듭나

마을이야기-영천
영천시 고경면 오룡2리, 누에치는 마을은 농약없는 청정지역이다.
2018 경상북도 마을이야기- 영천 누에치는마을 영천시 고경면 오룡2리, 30여가구 남짓한 작은 마을을 둘러싼 산기슭에는 짙은 녹색의 뽕나무가 가득하다. 한때는 영천의 오지마을로 여겨지던 이곳은 봄,가을이면 전국의 관광객들로 북적인다. ‘먹을 게 없어서 젓가락질도 제대로 못 배웠다’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가난한 마을이었던 오룡2리가 영천에서도 손꼽히는 부자마을이 된 것은 ‘누에’의 덕분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누에는 비단실을 만들어내지만 이 마을의 누에는 또 다른 삶을 살아간다.

이러한 변화의 중심에는 ‘누에치는 마을 영천양잠 영농법인’이 있다.

경주 최씨 집성촌으로 조선시대부터 양잠업의 명맥을 꾸준히 이어왔던 이 마을은 전국의 누에농가들이 다 그러했듯이 1990년대 초반 위기를 겪게 된다. 중국산 누에고치가 수입되면서 국내산 고치가 가격이 폭락하고 기상이변으로 누에고치 생산에도 차질이 생기는 안타까운 일이 벌어진 것. 어떻게 하면 위기를 극복할 수 있을까 고민하다가 예로부터 누에가 소갈병(당뇨)에 좋다는 점에 착안하여 입는 누에에서 먹는 누에로 발상의 전환을 하게 된다.

누에를 식용으로 제품화하는 것은 사실 이 마을 사람들에게는 낯선 일이 아니었다. 누에가 몸에 좋다는 걸 알고 누에를 삶아 말려 가루로 만들어 먹는 등 오래전부터 식용해 왔고, 그 덕분인지 마을 주민 대부분이 장수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먹는 누에’로의 변신이 성공할 수 있다는 믿음을 갖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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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가을이면 누에에게 먹일 청정한 뽕잎을 따는 손길이 분주하다.

1995년 농촌진흥청과 경희대의 공동연구로 누에 분말의 식후 혈당 강하 관련 논문이 발표되고, 영천양잠농협이 제품화에 성공하면서 ‘먹는 누에’ 사업은 힘을 얻기 시작한다. 개별 농가보다 경영을 효율적으로 할 수 있는 법인 공동체가 경쟁력을 높여 생존 가능성이 높다는 판단에서 ‘누에치는마을 영농법인’도 만들었다.

현재 오룡2리 38가구 60여명의 주민 대부분이 ‘누에치는 마을’이라는 하나의 법인으로 똘똘 뭉쳐 뽕나무 재배부터 누에치기 체험까지 공동으로 진행한다. 2015년에는 기능성 양잠 산물 종합단지를 완공해서 뽕잎을 이용한 한과, 식혜, 엿 등을 만드는 전통식품 생산시설을 비롯한 전시, 판매, 체험시설까지 갖추고 본격 가동 중이다. 건강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누에환과 뽕잎차 등이 특히 인기가 많다.

오룡2리는 마을의 청년회 가입연령이 74세까지이다. 농촌인구의 고령화 때문이기도 하지만 그만큼 장수하는 사람이 많다는 이야기이기도 하다.

도시에서라면 경로당에서 어른 대접 받을 나이지만 이곳에서는 청년으로 마을의 주축이 된다. 영농법인 초기에는 70세 이상으로 실버작목반을 만들어서 운영하기도 했다. 마을 주민들의 평균 나이가 높아도 누에농사에는 큰 어려움이 없다. 누에농사는 일년에 두 번 봄, 가을 한 달 정도만 바쁘게 움직이면 되고 요즘은 많은 공정을 자동화해 크게 힘이 들지 않기 때문이다.

누에 치는 마을은 농약 없는 청정지역이다. 누에가 먹는 뽕잎은 농약 성분이 조금이라도 섞이면 안 된다. 이곳에서 생산된 누에와 뽕잎 가공품들을 안심하고 먹을 수 있는 이유이다.

‘누에치는 마을’은 생산, 가공 그리고 체험까지를 아우르는 6차산업의 모델로 삼아도 전혀 손색이 없다. 지난 2006년 개관한 누에체험학습관은 일 년에 두 번 문을 연다. 누에를 치는 시기인 5월 중순에서 6월 중순과 9월 등 봄 가을 한달씩 관람객을 맞는다. 날씨 등 여건에 따라 개관 일정은 해마다 조금씩 다르다.

체험관 앞에는 길이 25m의 세상에서 가장 큰 누에가 눈길을 끈다. 안으로 들어가면 실물처럼 그려진 누에의 몸속 기관들이 먹이를 섭취한 후 배설하는 과정을 관찰할 수 있다.

누에 체험학습관에서는 양잠의 기원부터 누에의 일생(누에씨-애벌레-누에고치-번데기-누에나방)에 대해서 배워보고 누에 만져보기, 뽕잎 주기, 누에고치에서 실뽑기까지 양잠의 전 과정을 체험해 볼 수 있어 인기이다.

비단실을 만들어내던 누에를 기능성 건강식품으로, 그리고 체험학습까지 하나의 문화콘텐츠로 만들어낸 성공사례를 배우기 위해 전국의 여러 농가에서도 많이 찾는 영천 누에치는 마을. 이것저것 눈 돌리지 않고 누에 하나에만 매달려 승부를 본 결과이기도 하다.

70년대말까지 버스도 전기도 들어오지 않던 오지마을에서 이제는 마을 전체가 부농이 된 영천누에치는 마을 주민들은 장학금 기탁 등 지역사회 환원사업도 활발히 하고 있다. 이런 변화에 외지에 나갔다가 다시 귀향하는 가구가 6가구에 이르고 앞으로는 젊은 귀농인구도 늘 것으로 기대가 된다.

글=서영진·배수경기자

사진=전영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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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필환 영천양잠농업협동조합장

“피로·혈당조절 효과…노년기 건강 지킴이”

최필환 영천양잠농업협동조합장

누에가 오룡2리의 효자가 된 데에는 최필환(59) 영천양잠농업협동조합장의 힘이 컸다.

누에치는 마을 영농법인의 초대 대표를 지내기도 한 최 조합장은 젊은 시절 잠시 증권회사에 근무하다 가업을 잇기 위해 고향으로 돌아왔다. 90년대 전국 양잠농가의 위기 상황에서 누에는 고집하되 새로운 방향을 찾아낸 그의 누에 사랑은 각별하다.

“누에가 얼마나 깨끗한데요. 누에는 똥도 버릴 것 없는 최고의 자원이고 청정자연에서 자란 뽕나무도 어느 것 하나 버릴 게 없지요.”

최필환 대표는 누에씨부터 누에치기, 고치만들기, 실뽑기까지 누에와 관련된 전 과정에서 경북 최고의 명장으로 인정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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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양한 제품들 중에서도 누에환과 뽕잎차가 효자품목이다.

“누에는 워낙 예민해서 뽕잎에 농약 성분이 조금이라도 들어가면 안 돼요. 이렇게 맑고 깨끗한 뽕잎을 먹고 자란 건강한 누에로 만든 제품들이니 안심하고 드셔도 좋습니다. 2002년에는 까다롭기로 이름난 미국 FDA승인도 받았습니다. 누에의 단백질은 혈관 건강에 좋지 않은 포화지방산이 적게 들어있어 미국에서는 어린이 과자나 사탕에 첨가하기도 합니다. 누에 제품은 스트레스로 인한 만성피로와 혈당조절, 갱년기 증상, 피부미용에 효과가 있어 중·노년기의 건강을 지키는 데에 아주 좋습니다.”

가볼만한 곳

◇임고서원임고서원은 고려말 충신 포은 정몽주(1337~1392) 선생을 기리기 위한 서원이다. 영천시가 2012년 역사공원으로 재탄생시킨 임고서원은 청소년들에게 인성교육의 장으로도 인기를 끌고 있다. 개성에 있는 선죽교를 재현해 놓은 다리를 건너며 단심가의 의미를 되새겨 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 언덕 위에 있는 정자에 올라 용연을 내려다보는 풍경도 일품이다.

서원 앞 수령 500년된 은행나무(경상북도기념물 제 63호)가 노랗게 물드는 가을이면 전국의 사진작가들이 찾는 명소이기도 하다.

◇영천전투메모리얼파크

2017년 개장한 영천전투메모리얼파크는 6·25전쟁 당시 역전의 신호탄이 된 영천전투를 기념하고 나라 사랑의 소중함을 알리기 위해 세워졌다. 호국안보를 테마로 한 체험형 관광이 가능한 곳이다. 6.25 전쟁 당시의 모습을 그대로 복원해놓은 곳에서 시가전과 고지전을 서바이벌체험으로 경험해볼 수 있다.

◇시안미술관

자연속에 숨쉬고 있는 아름다운 미술관으로 이름난 시안미술관은 2004년 폐교를 활용해 문을 연 경북 최초의 제 1종 등록미술관이다.

향토작가는 물론 국내외 수준 높은 작가들의 예술작품들을 연중 전시하고 있다. 넓은 잔디마당에 전시된 조각 작품들을 배경으로 사진찍기에도 좋아 데이트코스나 가족나들이 장소로도 인기를 끌고 있다.

시안미술관 야외조각공원에서 출발해서 별별미술마을 구석구석에 숨어있는 예술 작품을 찾아보며 걸어보는 것도 좋다.

월요일 휴무, 관람시간은 오전 10시30분부터 오후 5시30분까지. 054-338-93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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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에체험학습관은 일년에 두번, 두달 정도만 문을 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