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아읍 소재 137세대 300명 거주
넓은 들판 위 섬 연상케 하는 지형
낙동강·감천 낀 비옥한 곡창지대
수많은 제자 길러낸 록주 선생
명창 테마 문화마을 조성 매진
판소리 콘텐츠 각종 사업 추진
 
관심리는 접성산 정상에서 내려다보면 마치 넓은 들판에 떠 있는 조그마한 섬을 연상하게 되는 마을로 동쪽으로 낙동강이 길게 흐르고 서쪽으로 감천이 낙동강에 합류하면서 넓은 평야를 형성하고 있다.
관심리는 접성산 정상에서 내려다보면 마치 넓은 들판에 떠 있는 조그마한 섬을 연상하게 되는 마을로 동쪽으로 낙동강이 길게 흐르고 서쪽으로 감천이 낙동강에 합류하면서 넓은 평야를 형성하고 있다.

2021경상북도 마을이야기, 구미 관심 1리 

관심리는 경상북도 구미시 고아읍에 속하는 법정리로 지명과 관련한 기록을 보면, 고려시대 이전에는 관심과 관심으로 표기하고 있으나 이유는 알 수 없다고 전해지고 있다. 다만 고려 후기 기록부터 모두 관심으로 표기되고 있는데, 신라시대에 행정 관청이 이 마을에 많이 있어 ‘관의 중심지’였으므로 관심이라 불렀다고 전해지고 있다. 관심리는 원래 일선주에 속한 지역으로 757년(경덕왕 16) 일선주가 숭선군이 되면서 군주가 상주하는 소재지가 되었다고 한다. 1977년 3월 행정구역 개편으로 1리와 2리로 분리되었다.

관심리는 접성산 정상에서 내려다보면 마치 넓은 들판에 떠 있는 조그마한 섬을 연상하게 되는 마을로 동쪽으로 낙동강이 길게 흐르고 서쪽으로 감천이 낙동강에 합류하면서 넓은 평야를 형성하고 있다. 동·서·북 3면은 거의 절벽에 가까운 급경사 지형이며, 남쪽은 완만한 경사를 이루면서 화개산 기슭과 연결되어 마을이 자리 잡고 있다. 이와 같이 관심리는 지형상 외적의 침입을 막는 천연 요새인 동시에, 풍부한 수자원과 비옥하고 넓은 농경지를 가지고 있어 쌀과 보리 중심의 농경 사회에서는 더없이 풍족한 마을의 형성 요건을 갖추고 있다. 그러나 산지가 적고 평야에 마을이 형성된 까닭에 겨울철 난방 및 취사에 필요한 연료와 사료를 구하기 어려웠고, 여름철 우기에는 낙동강이 범람하여 넓은 들판이 물바다가 되어 낙동강에 있어야 할 나룻배가 마을 뒤 대망천 제방에 와서 닿는 경우도 있어 농작물의 피해도 많았다고 한다. 오늘날에는 낙동강 제방이 완공되어 안전하게 농사를 지을 수 있어 벼농사 중심의 곡창지대이다. 하지만 벼와 보리 중심의 농업과 아울러 땅콩 농사와 시설 재배는 농가 소득향상에 크게 기여를 하였으나, 주변 고아농공단지와 구미공단에서의 노동 임금보다 높지 않음으로 인해 마을 주민들이 농업에 종사하기보다 인근 공단에서 일하기를 선호하고 있어 가구의 소득원이 농산물 판매에서 노동 임금으로 변하고 있다.

관심1리는 고아읍 소재지로서 137세대에 300여명의 주민이 거주하고 있어 오늘날 농촌지역으로서는 규모가 작지 않은 마을이나 최근 농촌지역에서 마을 권역별 사업을 통한 마을의 특화사업을 통해 환경 개선과 주민 소득을 올리는 것에 비해 마을의 특화사업이 없음을 안타깝게 여기고 이 마을 출신인 명창 박록주 선생을 테마로 한 ‘박록주 마을’ 만들기를 문화콘텐츠로 한 지역특성화 문화마을 가꾸기에 매진하고 있다.

​​박록주 선생 생전모습
​​박록주 선생 생전모습

 


박록주(1905~1979) 선생은 판소리 동편제의 대가로서, 본명은 명이이고, 호는 춘미이며, 예명이 록주이다. 20세기 우리나라 판소리사에서 판소리의 발전에 크게 기여한 것으로 평가받고 있는 박록주 명창은 여성으로서 남성적인 동편제 소리의 맛을 제대로 구현한 대표적인 인물로 바로 이 마을 관심리 437번지에서 출생했다. 선생은 12세(1916년)때 동편제 판소리 대가 박기홍 선생에게 춘향가를 시작으로 29세까지 김창환, 강창호, 송만갑, 김정문등 당대 최고의 명창들에게 흥보가, 수궁가, 춘향가, 심청가, 숙영낭자전 등 판소리와 단가를 두루 배우고, 22세에 콜럼비아레코드, 빅타레코드 등에서 음반을 취입했으며 경성방송국 방송에도 출연했다. 24세에 조선극장의 팔도명창대회 무대에 섰고 이때부터 전국 명창으로 이름을 날렸다.

박록주선생 기념비
박록주선생 기념비

 

관심리 출신의 박록주명창을 기리기 위한 '명창박록주 기념  전국국악대전'
관심리 출신의 박록주명창을 기리기 위한 ‘명창박록주 기념 전국국악대전’

 

이와같이 박록주 선생은 판소리 공연과 창극 공연은 물론 국악방송에도 출연했을 뿐만 아니라 수많은 제자를 판소리의 동량으로 키워냈으며 44세에 김소희, 박귀희 등 여성명창들을 규합해 여성국악동호회를 조직하였으며, 48세 봄에 눈병으로 한쪽 눈을 잃었으나 대구에서 국극사(보랑국극단)를 결성하고 여성국극 ‘열녀화’로 동부전선에 위문공연을 하기도 하였다. 67세에는 판소리보존연구회를 설립해 초대 이사장을 맡아 정통 판소리를 지킨 공적을 높게 평가받고 있다. 1964년 국내 여성 최초로 국가중요무형문화재 판소리 제 5호 ‘흥보가’ 예능보유자로 등재되었고, 박송희, 조상현, 이옥천, 박초선, 성창순, 성우향, 왕기창, 이일주, 장영찬, 한농선, 조순애 등 수 많은 제자를 길러내는 등 우리나라 판소리계에 큰 족적을 남긴 인물로 평가받고 있다.

박록주기념사업회에서는 판소리아카데미를 열어 판소리, 단가, 민요 등을 보급하고 있다.
박록주기념사업회에서는 판소리아카데미를 열어 판소리, 단가, 민요 등을 보급하고 있다.

 

따라서 관심리에서는 이 마을이 배출한 판소리 명창을 기리는 각종 사업을 통해 문화마을로 거듭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최규열기자·이석형 객원논설위원

 

<우리마을은>

박록주 선생의 생전 모습
김현조 박록주기념사업회 이사장, 박복상 이장(왼쪽부터)

 

“동편제 판소리 중심지 도약” 박복상 이장·김현조 박록주기념사업회 이사장

처음 만났지만 오랜 벗인 양 친근하고 후덕한 인상의 관심 1리 박복상 이장은 이 마을에서 태어나 마을을 벗어나 생활해 본적이 없는 토박이로 4년째 이장을 맡아 마을의 발전을 위해 봉사하고 있다. 박 이장은 과거 우리 농촌지역에서 흔히 그러했듯이 5남매의 막내로서 부모님 밑에서 농사일에 종사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70년 가까이 고향을 지키게 되었다고 한다.

박 이장은 관심리가 마을 앞 넓은 평야로 인해 농업소득 이외는 특별히 소득을 창출할 수 있는 먹거리가 부족하고, 읍 소재지인 까닭에 마을만의 특색 있는 콘텐츠가 없어 마을을 다른 마을과 차별화할 수 있는 것이 없을까 고심하던 중, 이 마을 출신인 국가무형문화재 제 5호 판소리 명창 박록주선생의 업적을 기리고 후진을 양성하기 위해 오랫동안 노력하고 있던 기념사업회와 의기투합하여 관심1리를 ‘판소리’를 주 테마로 한 지역특성화 문화마을로 가꾸어나가기 위해 불철주야 노력하고 있다. 이의 일환으로 2019년 5월에는 박록주 선생 생가 터 인근의 500m 가량의 도로명을 관심로에서 ‘박록주로’로 변경하기도 했다.

관심리 출신 박록주명창을 기리기 위한 사업은 지난 2000년 구미문화예술진흥원 창단과 더불어 2001년부터 ‘명창박록주기념 전국국악대전’을 개최되면서 이어져 오고 있었으며, 2006년부터는 대통령상을 수여하고 있을 만큼 전국적으로 인정받고 있는 대회이다. 기념사업회는 이 마을 출신인 동편제의 거장 춘미 박록주 선생의 예술혼을 전승하고 그의 업적을 계승하며, 지역사회 판소리 문화의 저변 확대 및 국가 무형문화재인 박록주 선생에 대한 위상 제고와 우수한 국악인을 발굴하여 국악 문화발전에 기여하기 위해 설립된 단체이다. 기념사업회는 2015년 기념사업회를 보다 체계적으로 운영하기 위하여 법인을 설립하고, 판소리 아카데미를 운영하여 판소리, 단가 민요, 고법 등을 보급하여 왔으며, 그동안 300여명의 수료생을 배출하는 성과를 보여주었다. 2020년부터는 추모음악회도 개최하고 있다. 특히 2021년에는 그동안 기념사업회 임원으로 활동하던 김현조씨가 공직생활을 마감하고 이사장에 취임하면서 2021년 5월 29일에는 마을회관 2층으로 박록주기념사업회 사무실을 이전 개소하여 본격적인 문화마을 조성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박복상 이장과 김현조 이사장은 관심리가 배출한 걸출한 판소리 명창인 박록주선생을 중심으로 관심리를 동편제 판소리의 중심지로 만들기 위해 박록주선생 생가 복원, 박록주기념관 조성, 소리공원 조성 등의 장기계획을 수립하고, 관심리를 판소리를 중심으로 특화된 문화마을로 조성하기 위하여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다짐하고 있다.

 

<가볼만한 곳>

도리사
도리사

 

신라불교 발상지…도리사

신라최초가람 적멸보궁 도리사는 신라 눌지왕때 고구려의 승려 아도화상이 아직 불교가 전래되지 않았던 신라에 포교를 위해 세운 신라불교의 발상지이다. 아도화상이 수행처를 찾기 위해 다니던 중 겨울인데도 이곳에 복숭아 꽃과 오얏 꽃이 활짝 핀 모습을 보고 좋은 터임을 알고 이곳에 절을 짓고 이름을 복숭아와 오얏에서 이름을 따 도리사라 하였다고 한다.

신라불교 초전법륜지로 불교의 성지인 이곳에서 1976년 아도의 석상이 발견되었으며, 1977년 4월 세존사리탑을 해체, 복원하는 과정에서 금동육각탑 형태를 띤 사리구와 석가모니 진신사리1과가 발견되었다. 금동육각사리함은 8세기 중엽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이 되며 국보 제208호로 지정되어 현재 직지사 성보박물관에 위탁 소장되어 있다. 특히 세존사리탑에서 발견된 사리는 무색투명하고 둥근 콩알 크기의 큰 사리로 우리나라에서 발견된 것 중 가장 가치 있는 사리로 평가되고 있다. 이외에도 도리사에는 보물 제470호로 지정된 삼층석탑을 비롯하여 아도화상 석상 · 세존사리탑 · 아도화상 사적비, 1876년에 그린 후불탱화를 비롯하여 1881년에 그린 신중탱화 · 독성탱화 · 칠성탱화등 조선 후기의 탱화가 있다.

 

길재 선생 위패 모신 곳…금오서원

금오서원은 흥선대원군의 서원 정리 때에도 훼철되지 않은 47개 서원 중 하나로, 길재 이외에도 김종직, 정붕, 박영, 장현광의 5현의 위패를 모시고 있다. 금오서원은 1567년 지역의 사림이 길재가 마지막으로 세상을 뜬 금오산에 서원과 사당을 건립하기를 청하여, 1570년(선조 3년) 금오산 아래의 지금의 금오지 자리에 서원을 건립하였다.

1572년에 송정 최응룡이 ‘금오서원봉안문’을 지어 길재의 위패를 모시었고, 1575년에는 사액 현판과 서책이 하사되었다. 임진왜란때 건물이 전소되면서 1602년에 금오산은 외진 곳이라 서원을 지킴에 어려움이 있다는 논의에 따라 1609년 지금의 선산읍 남산에 복원하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