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50년 이어 온 김종직 후손 집성촌
20여년 전부터 농촌체험마을로 변신
조용하던 선비촌, 관광객 늘며 활기
충효 교육·전통음식·농산물수확…
사시사철 배우고 즐기는 관광지
고택 운치 그대로 살린 ‘한옥스테이’
외국인들 ‘엿 만들기’ 매력에 흠뻑

옛 정취를 그대로 간직하고 있는 개실마을 전경. 전영호기자
옛 정취를 그대로 간직하고 있는 개실마을 전경. 전영호기자

2019 경상북도 마을이야기, 고령 개실마을

마을에 들어서자마자 보이는 기와집들이 예로부터 양반마을이었음을 알려주는 개실마을은 점필재 김종직 선생의 후손들, 일선(선산) 김씨가 일가를 이루어 사는 마을이다. 마을 뒤쪽으로는 화개산과 대나무숲, 앞쪽으로는 나비가 춤을 추는 모양새를 갖고 있다는 접무봉이 한 눈에 들어오고 소하천도 흐르고 있어 그야말로 배산임수의 터에 들어서있다.

 

김종직 선생을 모신 사당이 있는 개실마을
김종직 선생을 모신 사당이 있는 개실마을

옛 정취를 그대로 간직하고 있는 마을 고샅을 따라 양 옆으로 늘어선 돌담과 기와집 사이로 느긋하게 걷다보면 흐드러지게 핀 배롱나무의 붉은 꽃이 지나가는 이의 발길을 붙든다. ‘꽃이 피고 골짜기가 아름답다’고 해서 개화실로 불리다가 지금은 개실로 불리는 마을 이름의 유래에 고개를 끄덕이게 하는 풍경이다.

연산군 때, 무오사화의 원인이 된 ‘조의제문(弔義帝文)’을 쓴 이가 바로 김종직 선생이다. 단종의 죽음을 애도하며 쓴 글로 인해 김종직 선생은 무덤에서 파헤쳐지는 부관참시를 당하고 후손들 역시 노비로 팔려가거나 죽임을 당하는 고초를 겪었다. 겨우 화를 피한 후손들이 350여년 전부터 이 곳에 정착해 18대손에 이르렀다. 현재는 70여가구 80여명의 주민이 살고 있다. 한 곳에서 터를 잡고 오래도록 살아온 집성촌인만큼 대부분의 주민이 26촌 이내이다.

시대가 바뀌어도 여자의 웃음소리가 담 밖을 넘으면 안되고 반바지나 슬리퍼 차림으로는 밖에도 못 나갈 정도로 전통적인 반가의 법도가 오히려 마을 발전의 걸림돌이 되어 불과 20년전만 해도 고령에서도 낙후된 마을로 여겨지던 곳이다. 개실마을이 ‘우리 마을이 달라졌어요’라고 불러도 좋을만큼 싹 바뀌어 전국적으로도 알아주는 부자마을이 되고 여러 마을에서 벤치마킹을 오는 마을로 변신하게 된데는 ‘개실마을 영농조합법인’ 김병만(77) 위원장의 역할이 크다. 지금은 위원장을 도와 김민규 사무국장이 열심히 뛰어다닌다.

마을의 변신은 2001년 농촌체험마을로 지정이 되면서부터다. 처음에는 외지인들이 마을을 시끌벅적하게 지나다니고 집을 들여다보는 것에 익숙치 않았지만 아이들 웃음소리나 북적이는 사람들로 차츰 마을이 활기차게 변했다. 그렇지만 실제 주민들이 거주하는 곳이므로 큰소리로 떠들거나 함부로 남의 집을 엿보거나 불쑥 들어가는 것은 삼가는 것이 예의다. 주민과 방문객이 함께 배려하는 것이 소중한 것을 함께 지켜가는 비결이 되지 않을까.

개실 마을 입구에는 세계 각국의 체험객들이 직접 만들어놓고 간 팻말이 붙어있다.
개실 마을 입구에는 세계 각국의 체험객들이 직접 만들어놓고 간 팻말이 붙어있다.

개실마을은 마을 전체가 체험학습장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충·효·예 등 전통교육체험은 물론 전통음식체험, 농산물수확체험, 그리고 만들기와 민속놀이 체험, 자연체험 등 무려 30여가지의 체험이 사시사철 다양하게 준비되어 있다. 사무실 벽에 붙은 게시판에 빼곡하게 적힌 일정이 마을의 인기를 짐작하게 한다. 마을 입구에 세워놓은 여러나라 언어의 팻말들도 개실마을의 글로벌한 인기를 알 수 있게 한다. ‘좋은 하루 보내세요’.‘감사합니다’라는 뜻의 팻말들은 이곳을 방문한 체험객들이 직접 꾸민 것이다.

현재 국내 체험객은 연간 8만여명에 이르고 세계 각국의 체험객들도 연간 1천명이 넘게 방문을 한다. 전국의 저소득층 가정을 위한 ‘꿈희망여행’(GKL사회공헌재단 주최) 프로그램은 한국 최고의 마을 대여섯곳만이 선정이 될 정도로 체험마을 선정이 까다롭기로 유명하다. ‘꿈희망여행’ 참가자들은 1년에 8회 개실마을을 방문한다.

마당에 흐드러지게 피어있는 배롱나무가 발길을 멈추게 한다
마당에 흐드러지게 피어있는 배롱나무가 발길을 멈추게 한다

도시에서 오는 체험객들을 위해 마을의 전통한옥 14동을 개량하여 민박체험도 한다. 못골댁, 웅기댁, 덕동댁, 하동댁 등 집안의 안주인 이름을 딴 민박은 한옥의 운치는 그대로 살리고 욕실이나 싱크대 등 편의시설은 현대식으로 바꿔 머무르는데 불편함이 없도록 했다. 한옥스테이에서만 느낄 수 있는 시골인심은 덤이다. 단체방문객은 마을 부녀회에서 뷔페식으로 식사를 제공하기도 하고 머무는 집에서 농가밥상을 받아볼 수도 있다. 평상에 앉아 밤하늘의 별을 보고 마을 앞 소하천에서는 뗏목타기 체험이나 미꾸라지 잡기 체험도 한다.

개실마을의 다양한 체험 가운데서도 가장 인기있는 것은 엿만들기다. 보통 엿만들기는 겨울에 하지만 워낙 인기가 좋아 지금은 상시체험이 가능하다. 쌀가루와 조청을 이용해 2인 1조가 되어 만드는 엿은 외국인들에게도 인기다. 처음에는 진한 갈색에 가깝던 엿이 시간이 갈수록 흰색으로 변해가는 과정도 신기하다. ‘코리안 캔디’를 만드는 과정에 마을 어르신과 외국인 체험객이 마주앉아 서로의 언어로 이야기하면서도 연신 얼굴에 웃음을 띠게 만드는 것도 체험의 매력이다. 전통방식으로 직접 손으로 만든 유과도 추석과 설 등 명절에는 주문이 폭주할 정도로 인기품목이다.

점필재 종택 사랑채, 뒤편으로 안채, 오른쪽으로는 서림각이 있다.
점필재 종택 사랑채, 뒤편으로 안채, 오른쪽으로는 서림각이 있다.

개실마을을 찾는다면 경북 민속자료 제 62호인 점필재 종택과 바로 옆에 있는 서림각도 빠트리지 말자. 지금은 18대손이 거주하고 있는 곳이니 예의를 지켜 둘러보는 것이 좋다. 종택에서 남서쪽으로 조금 가면 김종직 선생을 기리기 위해 지방 유림들이 건립한 도연재가 있다. 도연재 앞에는 서울로 향하는 진상품을 합천군수와 고령현감이 인수인계하기 위한 장소를 알리는 비석이 옮겨져 있다. 개실마을은 효자효부들이 많이 배출된 마을로도 이름높다. 도연재 앞에는 5대에 걸쳐 효를 행한 마을임을 알리는 비석이 서 있다. 마을의 효자 중 ‘어머니가 편찮으신 중에 꿩고기 산적이 먹고 싶다 하니 부엌으로 꿩이 날아들고, 잉어회가 먹고 싶다 하니 연못에서 잉어가 튀어나왔다’는 김문정 선생의 일화는 마치 전설처럼 전해져온다. 이런 사연을 간직한 연못 이출지에는 잉어조형물이 세워져있다.

역사적 사실과 함께 마을 뒷산의 도적굴 등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 등이 궁금하다면 마을 입구에 있는 문화관광해설사의 집을 두드려보자.

전통 문화와 넉넉한 시골인심, 그리고 다양한 체험이 어우러진 곳. 바로 고령 개실마을이다.

추홍식·배수경기자

<우리 마을은>

“옆마을도 함께 잘 사는 전통마을로”, 김민규 사무국장

김민규 사무국장
김민규 사무국장

마을의 젊은 일꾼 김민규(52·사진) 사무국장은 김종직 선생의 18대손이다. 17대 종부인 어머니가 돌아가신 후 종택을 비워둘 수 없어 큰형님(종손)을 대신해 4년 전 마을로 들어왔다. 공무원이라는 안정적인 직업을 그만두고 귀향하는 데는 큰 결단이 필요했다. “처음 마을에 들어왔을 때 마을의 막내가 환갑이셨어요. 종택이 빌 줄 알고 걱정했는데 마을에 들어와 지켜줘서 고맙다고 마을 어르신들이 선물로 가져다 주신 휴지가 10년은 거뜬히 쓸 수 있을 정도예요.” 그만큼 환영을 받았다는 이야기다.

집성촌이니만큼 다 집안 어르신이기도 하지만 어른들 모시고 마을 일을 하는데 몸사리지 않으면서 끈끈한 정도 쌓였다. 지금은 어느 댁이던 집안 대소사는 물론 살림살이도 훤하다. 고령 장날이 되면 어르신들이 아침 7시부터 마을입구에서 기다리신다. 젊은 사무국장의 등장은 마을 분위기도 달라지게 했다.

“지금 개실마을은 전통을 유지하면서도 주민들과 함께 잘 사는 마을이 되었습니다. 한가지 걱정이 있다면 체험의 주축이 되는 부녀회원들의 연세가 70세부터 81세까지라 체력적인 부담이 커지고 있는 것이예요.” 체험객들로 북적이는 마을에 중장년층의 주민들이 많이 들어왔으면 하는 것이 바람이다. 이제는 개실마을 뿐 아니라 주변 마을까지 함께 아우르는 방법을 모색하고 있기도 하다.

“우리 마을만 잘 먹고 잘 사는 것이 아니라 옆 마을부터 시작해서 고령 전체가 다 잘 먹고 잘 사는 마을이 되면 더 좋겠죠.”

<주변 가볼만한 곳>

대가야박물관 왕릉전시장
대가야박물관 왕릉전시장

 

◇대가야박물관…대가야 빛나는 역사ㆍ문화탐방

대가야박물관은 가야를 비롯한 고령지역 역사와 문화를 체계적으로 전시해놓은 박물관이다.

현재 역사관은 전시시설 개편과 리모델링 공사로 인해 2020년 4월까지 휴관 예정이다. 그렇지만 왕릉전시관과 어린이 체험실은 정상운영한다.

왕릉전시관은 국내에서 최초로 확인된 최대 규모의 순장왕릉인 지산동 44호분의 내부를 발굴 당시의 모습 그대로 재현해 놓은 전시관이다. 날이 좀 선선해지면 전시관 뒤편으로 이어지는 언덕을 따라 크고 작은 700기의 고분이 자리잡고 있는 지산동 고분군도 함께 둘러보자.

악성 우륵을 기리고 가야금 체험을 할 수 있는 우륵박물관
악성 우륵을 기리고 가야금 체험을 할 수 있는 우륵박물관

 

◇우륵박물관…가야금 멋·풍류에 빠져볼까

우륵박물관은 가야금을 창제한 악성 우륵을 기리고 가야금의 세계를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만들어진 테마박물관이다.

가야금뿐 아니라 아쟁과 해금 등 전통 현악기도 전시되어 있으며 직접 가야금 연주 체험을 해볼 수도 있다.

대가야역사테마관광지
대가야역사테마관광지

 

◇대가야역사테마관광지…철의 왕국으로 떠나요~

철의 왕국 대가야를 테마로 2009년 개장했다. 고대가옥촌, 흙과 불의 세계, 토기·철기방 등 전시실과 탐방숲길도 있다.

레일 썰매장과 VR체험관, 놀이터가 있으며 여름철 물놀이장도 인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