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령가얏고마을드론

논과 밭 사이 산자락 아래 자리한 고령군 대가야읍 가얏고마을. 우륵이 가야금을 만들고 연주했다고 전해지는 곳으로, 우륵과 가야금의 옛이야기를 다양한 체험과 문화공간으로 되살려가고 있다. 김선국 사진작가

 

광주대구고속도로 고령IC를 빠져나와 차로 10분 남짓 달리면 논과 밭 사이로 작은 농촌마을이 나타난다. 고령군 대가야읍 쾌빈3리 정정골이다. 20가구 30여 명이 살아가는 작은 마을이다. 마을 앞으로 논이 펼쳐지고 고령의 명산인 주산이 병풍처럼 둘러서 있다. 산자락 아래 낮은 집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는 모습은 여느 농촌마을과 다르지 않다.

하지만 마을 입구에 들어서면 그 첫인상은 달라진다. ‘가얏고마을’이라고 적힌 이정표에는 ‘가얏고 길’을 비롯해 우륵의 집, 우륵박물관, 가야금 공방 등으로 향하는 방향 표지판이 양쪽으로 뻗어 있다. 바닥에 그려진 트릭아트를 비롯해 마을 곳곳에서 가야금의 흔적을 만날 수 있다. 이곳은 우륵이 가야금을 만들고 연주했다고 전해지는 곳이다.

‘쾌빈’(快賓)이라는 이름은 대가야의 역사를 품고 있다. 대가야가 번성하던 시절 외국 사신이나 귀한 손님을 맞아 연회를 베풀던 ‘쾌빈정’에서 유래한 이름이라 전해진다. 지금 쾌빈정은 남아 있지 않지만 지명 속에 그 흔적이 이어지고 있다. 쾌빈3리를 이곳 사람들은 ‘정정골’이라 부른다. 정정골이라는 이름에는 우륵과 가야금의 이야기가 담겨있다. 가실왕의 명을 받은 우륵이 이곳에서 가야금을 만들고 연주하자 그 소리가 골짜기에 ‘정정’ 울려 퍼졌다고 해서 붙은 이름이라고 전한다. 한자로는 정정곡(丁丁谷) 또는 가야금의 ‘금’(琴)과 골짜기 ‘곡’(谷)을 따서 금곡(琴谷)이라고도 불렸다.

마을 인근 주산 자락에는 우륵의 영정을 모신 영정각과 우륵기념탑이 있다. 
마을 인근 주산 자락에는 우륵의 영정을 모신 영정각과 우륵기념탑이 있다. 

 

우륵은 왕산악, 박연과 함께 우리나라 3대 악성(樂聖)으로 꼽히는 음악가다. 대가야 가실왕 때 활동했으며 이후 나라가 어지러워지자 신라로 건너가 가야금과 노래, 춤을 전했다. 마을 인근 주산 자락에는 우륵을 기리는 기념탑과 영정각이 자리하고 있다. 

우륵을 이야기할 때 빼놓을 수 없는 것이 가야금이다. ‘삼국사기’에 따르면 가실왕은 중국의 쟁(箏)을 본떠 가야금을 만들고 우륵에게 명해 12곡을 짓게 했다. 우륵이 지은 12곡 가운데 대부분은 당시 가야의 여러 지역 이름과 관련된 것으로 전해진다. 각 지역의 음악을 가야금이라는 하나의 악기에 담아 가야의 문화적 결속을 꾀하려 했던 것으로 해석된다. 가야금의 형태에도 의미가 담겨 있다. 둥근 위판은 하늘을, 평평한 아래판은 땅을 상징하고 12개의 현은 한 해 열두 달을 본떴다고 전한다.

1500여 년 전 처음 만들어진 가야금에서는 과연 어떤 소리가 났을까. 소설가 김훈은 쇠락해가는 가야를 배경으로 우륵과 가야금의 탄생, 예술가의 삶을 그린 소설 ‘현의 노래’에서 기록으로는 알 수 없는 그 순간을 상상력으로 되살렸다. 우륵이 만든 가야금을 제자 니문이 연주하자 우륵은 처음 듣는 소리와 마주한다. “그 소리는 지금까지 없었던 새로운 소리였다. 그리고 지나간 모든 소리의 그림자들을 모두 끌어안은 소리였다.” 김훈은 이어 소리가 태어나고 사라지기를 반복하며 새로운 소리를 불러내는 모습을 그린다. 오래전 정정골에 ‘정정’ 울렸다고 전해지는 가야금 소리를 떠올리게 한다.

가얏고문화관 광장에 설치된 대형 가야금 조형물
가얏고문화관 광장에 설치된 대형 가야금 조형물

 

가야금 옛 이름 따 마을 이름 짓고

우륵의 역사 마을의 새 자산으로

미니 가야금 만들고 연주하고

한 해 관광객 8천~9천여명 찾아

우륵과 가야금의 이야기를 품고 살아온 정정골이 ‘가얏고마을’이라는 새로운 이름을 얻은 것은 2007년 행정안전부가 주관한 ‘살기 좋은 지역 만들기’ 국가지정 시범사업에 선정되면서다. 가야금의 옛 이름인 ‘가얏고’를 따 마을 이름을 짓고, 우륵과 가야금의 역사를 마을의 새로운 자산으로 삼았다. 이후 가야금 문화를 알리고 직접 체험할 수 있도록 가얏고문화관과 체험관, 우륵의 집 등이 들어섰다.

가얏고마을의 다양한 체험이 이뤄지는 가얏고 문화관. 광장에는 ‘용을 타고 승천하는우륵’ 트릭아트가 그려져있다.
가얏고마을의 다양한 체험이 이뤄지는 가얏고 문화관. 광장에는 ‘용을 타고 승천하는우륵’ 트릭아트가 그려져있다.

 

마을 입구에 자리한 가얏고문화관은 가얏고마을의 다양한 체험이 이뤄지는 공간이다. 광장에 들어서면 커다란 가야금 조형물과 트릭아트가 먼저 눈에 들어온다. 용을 타고 하늘로 오르는 우륵이 가얏고를 들고 있는 모습을 입체적으로 표현한 그림은 마을을 찾는 관광객들의 포토존 역할도 한다. 문화관에서는 가야금 연주와 미니 가야금 만들기 등 가얏고마을만의 체험을 할 수 있다.

가야금 연주 체험. 약 40분 동안 기본적인 연주법을 배우며 하나둘 음을 익혀 짧은 곡을 완성해가는 가얏고마을의 대표 체험 프로그램이다.
가야금 연주 체험. 약 40분 동안 기본적인 연주법을 배우며 하나둘 음을 익혀 짧은 곡을 완성해가는 가얏고마을의 대표 체험 프로그램이다.

 

가장 눈길을 끄는 것은 가야금 연주 체험이다. 처음 가야금을 접하는 사람도 약 40분 동안 기본적인 연주법을 배우고 나면 ‘아리랑’ 같은 짧은 곡을 연주해볼 수 있다. 처음에는 낯선 악기가 어렵게 느껴지지만, 하나둘 음을 익혀 곡을 완성해가는 재미가 있다. “나도 가야금을 연주할 수 있네”라며 신기해하는 체험객도 많다고 한다.

가얏고마을에서는 미니가야금 만들기와 장명루 만들기 등 다양한 체험을 할 수 있다. 
가얏고마을에서는 미니가야금 만들기와 장명루 만들기 등 다양한 체험을 할 수 있다. 

 

미니 가야금 만들기를 비롯해 꽃산병 만들기, 오방색 실로 무병장수를 기원하는 장명루 만들기, 겨울철 김장 등 다양한 체험도 있다. 프로그램 진행에는 마을 부녀회원들이 직접 강사로 나선다. 단체 방문객에게는 주민들이 한식뷔페도 차려낸다. 음식 맛에 반해 여러 차례 다시 찾는 관광객도 있을 정도다.

미니가야금만들기체험

가얏고마을을 찾은 외국인 관광객들이 미니 가야금 만들기 체험을 하고 있다.

 

가얏고마을에는 한해에 8천~9천명의 관광객이 찾는다. 외국인들의 발길도 이어진다. 호주 등 해외에서 온 관광객들은 처음 보는 가야금을 직접 만지고 줄을 튕겨보는 것만으로도 신기해한다. 다만 바닥에 앉아 연주하는 자세가 익숙하지 않아 실제 연주 체험에는 어려움을 겪기도 한다.

문화관 옆 체험관에는 3개의 객실을 갖춘 숙박시설이 마련돼 있다.
문화관 옆 체험관에는 3개의 객실을 갖춘 숙박시설이 마련돼 있다.

 

문화관 옆 체험관에는 3개의 객실을 갖춘 숙박시설이 마련돼 있어 가족이나 단체 방문객들이 이용할 수 있다. 객실에 따라 4명에서 10명까지 묵을 수 있다. 다양한 체험과 농촌에서의 하룻밤을 함께 즐길 수 있는 셈이다.

우륵의집

가얏고문화관 뒤편에 자리한 ‘우륵의 집’. 우륵이 가야금을 만들고 제자들과 연주했다고 전해지는 정정골의 이야기를 바탕으로 조성했다.

가얏고문화관 뒤편에는 초가지붕을 얹은 ‘우륵의 집’이 자리한다. 우륵이 가야금을 제작하고 제자들과 연주했다고 전해지는 정정골의 이야기를 바탕으로 조성한 공간이다. 안채와 공방, 창고, 우물 등을 갖춰 당시 생활 모습을 엿볼 수 있도록 했다.

우륵의 집에는 가야금의 울림통이 될 오동나무를 켜서 만든 기다란 판재들이 놓여있다. 
우륵의 집에는 가야금의 울림통이 될 오동나무를 켜서 만든 기다란 판재들이 놓여있다. 

 

공방 안에는 가야금의 울림통이 될 오동나무를 켜서 만든 기다란 판재들이 놓여 있다. 나무를 다듬는 연장과 가야금 제작 과정을 보여주는 물건들도 함께 볼 수 있다. 초가와 흙벽, 투박한 나무판을 보고 있으면 이곳에서 가야금을 만들었다고 전해지는 우륵의 모습을 자연스레 떠올리게 된다.

우륵의 집 바로 옆 농가 처마에 걸린 마늘.
우륵의 집 바로 옆 농가 처마에 걸린 마늘.

 

우륵의 집 바로 옆 농가로 눈을 돌리면 처마 아래 주렁주렁 매달린 마늘이 눈에 들어온다. 내년에 다시 심을 종자용 마늘이다. 우륵의 옛이야기를 재현한 공간과 오늘을 살아가는 주민들의 일상이 담 하나를 사이에 두고 나란히 이어진다. 과거에는 참외와 멜론 농사를 많이 지었지만 주민 감소에 따른 일손 부족 등으로 지금은 마늘과 양파가 주작물로 자리 잡았다. 11월에 심은 마늘은 이듬해 5월 말부터 수확해 건조와 선별 작업을 거쳐 6~7월 공판장으로 출하한다.

1500여 년 전 우륵의 가야금 소리가 ‘정정’ 울렸다고 전해지는 마을. 지금은 이곳을 찾는 이들의 손끝에서 다시 가야금 소리가 울려 퍼진다. 오랜 세월이 흘렀지만 우륵과 가야금의 이야기는 오늘의 ‘가얏고마을’에서 계속되고 있다.

이소형·배수경기자

<우리 마을은>

안성호 가얏고마을 운영위원장
안성호 가얏고마을 운영위원장

 

안성호 운영위원장 “막내가 62세…다시 북적일 날 꿈 꾸죠”

“처음에는 ‘조용한 마을에 시끄럽게 이런 사업을 왜 하느냐’고 했어요.”

농사를 지으며 살아온 조용한 마을에 관광객이 찾아오고 체험 프로그램을 운영한다는 것이 낯설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안성호 가얏고마을 운영위원장은 2016년부터 지금까지 위원장을 맡아 마을의 변화를 가까이에서 지켜왔다. 정정골에서 태어나고 자란 안 위원장은 어릴 때부터 우륵과 가야금에 얽힌 이야기를 들으며 자랐다. 너무 익숙해 특별하다고 생각하지 못했던 이야기는 2007년 ‘가얏고마을’이 조성되면서 마을을 대표하는 자산이 됐다. 가얏고마을이 조성된 이후 주민들도 하나둘 변화하기 시작했다. 가야금 연주와 미니 가야금 만들기, 꽃산병과 장명루 만들기 등 체험 프로그램에는 부녀회원들이 직접 강사로 나선다. 단체 관광객들에게 내놓는 음식도 주민들이 직접 준비한다.

주민들이 열정적으로 참여하고는 있지만 안 위원장의 가장 큰 고민은 ‘사람’이다. 현재 마을 주민은 30여 명. 62세의 안 위원장이 마을의 막내일 정도로 고령화가 심하다. 주민들의 평균연령도 70대 후반이라 농사일뿐 아니라 체험 프로그램과 마을 운영을 함께 맡을 인적 자원도 갈수록 줄고 있다.

마을의 실무를 맡은 곽주영 사무장의 역할도 그만큼 커졌다. 곽 사무장은 가얏고 카페 운영부터 체험객을 맞고 프로그램을 진행하는 일까지 마을의 크고 작은 살림을 맡고 있다. 혼자 감당해야 할 일이 많아 어려움도 적지 않지만 마을을 알리고 체험객을 맞는 일을 이어가고 있다.

가얏고마을은 마을 밖에서도 활로를 찾고 있다. 개실마을, 신리마을, 안림딸기마을, 예마을 등 고령지역 농촌체험마을과 농촌관광협력단을 꾸려 각 마을의 특색 있는 체험을 연계하고 있다. 한 마을이 모든 것을 갖추기보다 서로 다른 체험을 연결해 보다 다양한 농촌관광을 즐길 수 있도록 한 것이다. 한동안 중단됐던 여행 프로그램도 올 하반기 다시 추진할 계획이다. 가얏고마을과 우륵박물관, 지산동고분군, 대가야생활촌, 대가야시장 등 고령의 주요 관광자원을 연계해 관광객의 발길을 끌어들인다는 구상이다.

지난 3월에 열린 제45회 악성우륵 추모제. 
지난 3월에 열린 제45회 악성우륵 추모제. 

 

안 위원장이 다시 살리고 싶은 것 중 하나는 ‘가얏고마을축제’다. 2016년부터 2018년까지 3년간 가을이면 마을에서 주민과 관광객이 함께하는 축제가 열렸다. 가야금 연주와 떡메치기를 비롯해 공연과 사진전, 시화전 등 다양한 프로그램이 펼쳐졌다. 주민들이 직접 준비한 먹거리도 인기를 끌었다. 악성 우륵을 기리는 추모제도 더욱 내실 있게 이어가고 싶은 바람이다. 악성우륵추모제는 1979년 시작돼 대가야축제와 연계해 이어져 왔다. 추모제가 열리면 출향인들도 고향을 찾아 우륵의 위업을 기린다.

“사람들이 다시 찾아와 북적이는 마을이 됐으면 좋겠습니다. ”

배수경기자 micbae@idaegu.co.kr

<가볼만한 곳>

가볼만한곳우륵박물관

우륵박물관 

◇우륵박물관…우륵 생애·가야금 역사 '한눈에'

2006년 문을 연 우륵박물관은 악성 우륵과 가야금을 주제로 한 테마박물관이다. 우륵의 생애와 가야금의 탄생, 제작 과정을 비롯해 정악가야금과 산조가야금, 다양한 개량가야금 등을 한눈에 살펴볼 수 있다. 거문고와 대금, 피리 등 전통악기의 소리를 직접 들어보는 전시도 마련돼 있다.

오동나무 건조장
오동나무 건조장

 

박물관 옆에는 가야금의 재료가 되는 오동나무를 말리는 건조장이 있다. 켜켜이 쌓인 오동나무 판재를 통해 하나의 가야금이 만들어지기까지 필요한 시간과 손길을 짐작할 수 있다.

소리체험관
소리체험관

 

최근에는 소리체험관이 더해졌다. 지난해 11월 운영을 시작한 소리체험관은 가야금뿐 아니라 세계의 다양한 악기와 일상에서 만나는 소리까지 영역을 넓힌 체험공간이다. 직접 듣고 체험하며 소리의 원리와 다양성을 경험할 수 있도록 꾸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