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주군 용암면 용정리 전경. 주민들을 위해 사비로 ‘두리방천’을 쌓은 염농산 여사의 나눔 정신은 그의 기명 ‘앵무’를 딴 ‘앵무봉사단’으로 이어져 다양한 봉사와 기부 활동으로 꽃피고 있다. 김선국 사진작가
성주군 용암면 용정리 전경. 주민들을 위해 사비로 ‘두리방천’을 쌓은 염농산 여사의 나눔 정신은 그의 기명 ‘앵무’를 딴 ‘앵무봉사단’으로 이어져 다양한 봉사와 기부 활동으로 꽃피고 있다. 김선국 사진작가

‘아너 소사이어티’는 사회복지공동모금회가 운영하는 개인 고액 기부자 모임이다.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실천하고 사회 전반에 나눔 문화를 확산하기 위해 2007년 만들어졌다. 1억원 이상을 기부한 정회원과 1억원 이상을 5년 이내에 나누어서 기부하는 약정회원이 있다. 가족이나 제3자가 기부하고 특정인을 대표로 추대하는 특별회원도 있다. 기업인과 전문직 종사자, 자영업자, 연예인, 공무원, 스포츠 스타 등 다양한 계층의 사람들이 참여한다. 회원들은 한 번의 기부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복지 현장과 취약계층 지원 등 다양한 사회공헌 활동을 한다. 현재까지 3천848명의 회원이 있다.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실천하는 한국형 기부문화라고 할 수 있다.

시계를 거꾸로 돌려 100년 전으로 돌아가 본다. 우당 이회영과 형제들은 전 재산을 처분해 만주에 신흥무관학교를 설립했다. 안동지역 명문가 출신인 이상룡은 전 재산을 처분에 만주에 독립운동 기지를 세우고 민족 교육에 힘썼다. 연해주 지역에서 상업과 군납사업을 큰 돈을 모은 최재형은 독립운동 자금을 아낌없이 지원했다. 이 밖에도 많은 사람들이 독립운동과 어려운 사람들을 위해 자신이 가진 것들을 나누었다. 이들 모두 100년을 앞서간 ‘아너 소사이어티’라고 할 수 있다. 이름을 들어보지도 못한 생소한 사람들도 있다. 그 중의 한 사람이 ‘앵무 염농산’여사다.

염농산 여사. 독립운동정신계승사업회 제공
염농산 여사. 독립운동정신계승사업회 제공

염농산 여사는 경상감영의 행수기생 출신으로 ‘앵무’라는 기명으로 활동했다. 대구 경북에서 활동한 사회운동가로 한학과 시, 가무에 능했다고 전해진다. 그의 예명과 기명인 ‘농산’과 ‘앵무’는 이태백의 시에 많이 등장하는 소재다. 이를 볼 때 그는 단순한 기생이 아니라 높은 경지의 인문학적 소양을 갖춘 사람으로 볼 수 있다.

염 여사는 1917년 대구에서 국채보상운동이 시작되자 가장 먼저 나선 여성이다. 기생이지만 돈만 좇을 것이 아니라 나라를 먼저 돌볼 줄 알아야 한다고 했다. 남들보다 먼저 100원을 기부하면서 “여력에 따라 의연하는 것이 국민의 의무다. 여자로서 감히 남자보다 한 푼이라도 더 낼 수는 없으니 누구라도 1천 원을 출연하면 죽기를 무릅쓰고 따라야 한다”고 했다. 당시 100원은 집 한 채 값에 맞먹는 금액이었다. 이 같은 염 여사의 기개에 국채보상운동의 주창자인 서상돈, 김병순, 정재학 등이 기만 원씩을 출연하기로 결의하면서 국채보상운동은 탄력을 받기 시작했다. 인력거꾼들은 담배를 끊을 것을 결의하고 걸인들까지 의연금을 냈다. 반찬 수를 줄여 빚을 갚자는 ‘부인감찬회’와 패물을 팔아 빚을 갚자는 ‘패물폐지부인회’도 만들어졌다. 대구지역에서 참여한 부인 의연자 수가 227명에 이른다. 이처럼 국채보상운동이 범국민적 운동으로 발전할 수 있었던 것은 염 여사처럼 솔선수범하는 여성들의 기개도 한몫했을 것이다.

염 여사의 기부 활동은 여기서 그치지는 않는다. 성주 용암면은 매년 여름이면 홍수가 나서 온 마을이 침수되는 피해를 입었다. 이런 사정을 듣고 염 여사가 나서서 사비로 제방을 쌓았다. 속칭 ‘두리방천’이다. 제방을 쌓으면서 생긴 들판을 ‘앵무들’이라고 불렀다. 염 여사의 공덕을 기리는 공덕비가 용암면 용정리에 있다. ‘염농산 제언 공덕비’다. 사람들은 ‘앵무빗돌’이라고도 부른다. 염 여사는 1937년 대구에 있는 교남학교(현 대륜중·고등학교)가 폐교 위기에 처하자 2만 원 상당의 부동산을 희사해 학교를 살리기도 했다. 논문 ‘근대화의 담지자로서의 기생 1’을 쓴 김중순 계명대 교수는 “당시의 여성으로서 극복하기 어려운 남녀평등의 가치 실현을 위해 적극적으로 나섰던 기생 출신의 대구 근대화의 담지자였음에 틀림이 없다”고 했다.

달성권번의 초대 회장이었던 염 여사는 태어난 해와 사망한 해가 자료마다 다르게 기록돼 있으며 출생지를 비롯해 정확한 생애에 대해서도 알려지지 않은 부분이 많다.

앵무 염농산 뜻 잇는 ‘앵무봉사단’

직접 뜬 모자 이웃에 나누며 첫 발

재능 기부로 봉사 규모 점차 키워

지역 축제 현장에서 직접 만든 참외 수세미와 키링을 팔고 있는 앵무봉사단원들.
지역 축제 현장에서 직접 만든 참외 수세미와 키링을 팔고 있는 앵무봉사단원들.

 

최근에 염 여사의 높은 뜻을 기리고 나눔의 문화를 이어가자는 봉사단이 결성되어 관심을 끌고 있다. 용정리를 비롯한 용암면 일원에서 활동하는 ‘앵무봉사단’(단장 문옥희)이다. 코로나가 극성을 부리던 2022년에 용암면 댄스와 난타, 요가 동아리 회원이 중심이 되어 결성했다. 봉사단 이름을 정하는 과정에서 많은 의견이 나왔으나 두리방천을 쌓아 용암면민들의 삶을 풍성하게 만들어 준 염 여사의 나눔 정신을 이어받자는 의미에서 ‘앵무봉사단’으로 정했다.

앵무봉사단이 지역특산물인 참외 홍보를 위해 만든 다양한 뜨개작품들.
앵무봉사단이 지역특산물인 참외 홍보를 위해 만든 다양한 뜨개작품들.

 

시작은 미미했다. 뜨개질로 모자를 만들어 마을에서 쓰레기 분리수거 하시는 분들에게 나누어 주었다. 이 소식을 들은 지역의 한 독지가가 털실 구입하는데 쓰라며 100만원을 기부했다. 이 돈으로 털실을 구입해 모자를 만들고 수세미도 만들었다.

앵무봉사단원들이  키링을 만들고 있다.
앵무봉사단원들이 키링을 만들고 있다.

 

한 단계 더 나아가 지역 특산물인 참외를 홍보하자는 뜻에서 참외 수세미와 키링을 만들었다. 수세미를 판매한 수익금은 계속 재투자를 하면서 사업을 확대했다. 성주참외 & 생명문화축제장과 메뚜기 축제장에 체험부스를 만들어서 운영하기도 했다. 참외마라톤에 참외 키링을 달고 나가 큰 인기를 끌었다.
 

앵무봉사단에서는 한달에 한번씩 염농산 제언 공덕비와 비각을 청소한다.
앵무봉사단에서는 한달에 한번씩 염농산 제언 공덕비와 비각을 청소한다.

 

이웃돕기 성금·장학금 기부도 활발

염 여사 추모제 연계 문화행사 계획

사회 곳곳 ‘선한 영향력’ 확산 기대

성주참외 & 생명문화 축제에서 체험부스를 만들어 참외수세미와 키링을 만들어 판매를 했다.
성주참외 & 생명문화 축제에서 체험부스를 만들어 참외수세미와 키링을 만들어 판매를 했다.

 

매월 회원 36명이 납부하는 회비와 체험비 수익금 등을 활용해 다양한 나눔 행사를 한다. 매년 100만 원의 이웃돕기 성금을 기부하고 염 여사가 교남학교에 기부한 정신을 이어받는 취지에서 성주군의 지역인재를 양성하는 별고을 장학금도 기부한다.

가을철에는 지역 어르신들께 삼계탕을 대접하고, 체육대회에 참가해 차와 음료를 나누는 봉사활동을 펼친다. 충북지역까지 가서 성주참외 & 생명문화축제 홍보하는 등 지역을 알리는 데도 힘을 보탠다.

앵무 염농산 여사를 기리기 위한 공덕비
앵무 염농산 여사를 기리기 위한 공덕비

나눔뿐만 아니라 지역의 전통문화를 이어가는데도 앞장선다. 매년 정월 대보름에는 한복을 입고 윷놀이를 하면서 전통문화의 맥을 이어간다. 한 달에 한 번씩 공덕비와 비각 청소를 하면서 염 여사의 나눔의 정신을 이어받자고 결의를 다진다. 이런 노력 덕분에 2025년에는 성주군수 표창을 받기도 했다. 용암면사무소에서는 봉사단 사무실을 마련해 주고 앵무길 조성을 준비하고 있다.

 

2023년부터 염농산 여사의 기일인 4월 11일에는 추모제를 지낸다. 
2023년부터 염농산 여사의 기일인 4월 11일에는 추모제를 지낸다. 

 

2023년부터 염 여사의 기일인 4월 11일에 추모제를 지낸다. 회원들이 정성을 들여 제물을 마련하고 제를 올린다. 올해 열린 제4회 추모제에는 인근지역 주민 50여 명이 참여 했다. 해를 거듭할수록 참여 인원이 늘어나고 있다. 특히 염 여사가 폐교 위기의 교남학교를 위해 부동산을 희사한 인연으로 대륜중·고등학교 동창회에서도 참석해 눈길을 끌었다. 동창회에서는 “저희들이 해야 할 일을 앵무봉사단에서 하고 있으니 감사하기 그지없다”며 꽃바구니를 올리고 지역 학생들에게 장학금도 전달했다.

앵무봉사단원들이 '염농산 제언 공덕비'와 비각 청소를 마치고 환하게 웃고 있다.
앵무봉사단원들이 '염농산 제언 공덕비'와 비각 청소를 마치고 환하게 웃고 있다.

앞으로는 추모제를 넘어 염 여사의 나눔의 정신을 기리는 문화행사로 발전시키는 방안을 계획하고 있다. 또한 나눔 문화의 선한 영향력이 계속 퍼져나가도록 하는데 초점을 맞추겠다고 한다.

추홍식기자·홍상철 수필가

 

<우리 마을은>

문옥희 앵무봉사단장
문옥희 앵무봉사단장

 

문옥희 단장 “내실있는 자급형 단체 조성 힘쓸 것”

“앵무 봉사단은 앵무 염농산 여사를 좋아하고 그분의 고귀한 정신을 계승 발전시키겠다는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자발적으로 참여해서 만든 단체입니다. 단체 결성의 취지처럼 모든 일을 자발적으로 해 나가고 있습니다”라고 문옥희 앵무봉사단장은 강조했다.

36명의 회원들이 모든 일에 솔선수범한다는 자세로 각종 봉사활동에 참여한다.

매월 한 차례 정기 모임을 갖지만 수시로 모이는 모임에도 단체 연락방에 회의 일정을 공유하면 한 몸처럼 모여들고 함께 행동한다.

자발적으로 모인 단체인 만큼 각종 봉사활동에서는 누가 시키지 않아도 먼저 팔을 걷고 나서는 것이 봉사단의 가장 큰 힘이라고 한다. 

특히 단체 운영에 필요한 경비를 확보하기 위해 회원들이 매월 납부하는 회비로 충당하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 스스로 모인 단체인 만큼 가급적 외부 도움보다 스스로 운영하는 자급형 단체로 발전시켜 나가겠다는 취지에서다.

문 단장은 팔방미인이다. 못하는 일이 없고 안 하는 일도 없다. 예전에는 어린이집 선생님으로 어린이들을 가르쳤다. 지금은 참외와 쌀농사, 한우를 사육하면서 식당까지 운영한다. 가정의 일만해도 정신이 없을 정도로 바쁘다.

이런 와중에도 사회활동에도 남다른 열정을 보이는 도전적 여성이다.

용암면 부녀회 총무와 용암면 댄스 동아리 회장, 난타 동아리 회장을 맡고 있다. 2022년에 앵무봉사단이 결성될 때 단원들의 추대로 단장직을 맡아서 이끌고 있다.

다른 사람들이 그 많은 일들을 어떻게 감당하느냐고 물으면 “바쁜 일정 속에도 여유는 있는 법”이라면서 미소를 짓는다.

앞으로는 “앵무 봉사단을 더욱 발전시키면서도 내실이 있는 알찬 단체로 만들고 염 여사가 실천했던 나눔의 문화를 지역사회에 확산시키는데 최선을 다하겠다”고 한다. 홍상철 수필가

 

<가볼만한 곳>

  

성주 성밖숲
성주 성밖숲

 

◇성주 성밖숲…수백살 왕버들 숲 ‘장관’

성밖숲은 성주읍 이천 변에 조성되어 있는 왕버들 숲이다. 수령이 수백 년에 달하는 왕버들 52그루가 큰 숲을 이루고 있어 천연기념물로 지정되어 있다. 여름이면 왕버들의 진한 푸르름과 바닥에 심겨진 보랏빛 맥문동이 조화를 이룬다. 이때가 되면 전국의 사진작가들이 모여드는 출사지로 명성이 자자하다. 관광객들도 보랏빛 맥문동을 보고 황홀경에 빠진다.

조선시대 성주읍성 서문밖에 조성한 인공숲으로 풍수지리설에 따른 ‘비보림수’인 동시에 홍수 예방을 위해 조성된 ‘수해방비림’이라는 역사적 배경을 가지고 있으며 생태적 가치도 높은 곳이다. 구전에 의하면 성밖 마을에서 어린 아이들이 이유도 없이 많이 죽자 한 지관이 “마을에 있는 족두리바위와 탕건바위가 마주 보고 있어서 그렇다”면서 “중간에 밤나무 숲을 조성하여야 한다”고 했다. 밤나무 숲을 조성했더니 우환이 사라졌다고 한다. 그러나 임진왜란 이후 민심이 흉흉해지자 밤나무 숲을 베어내고 왕버들 숲을 조성했다는 이야기가 전해져 온다. 매년 이곳에서 성주참외 & 생명문화축제가 열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