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천금호읍대미2리드론

나지막한 산이 마을을 감싸고 있는 영천 금호읍 대미2리. 포도밭과 저수지가 어우러진 풍경 속에서 주민들이 농사를 짓고 이웃과 정을 나누며 살아가고 있다. 김선국 사진작가

 

여름의 끝자락, 영천시 금호읍 대미2리에서는 포도가 탐스럽게 영글어간다. 아직은 초록빛을 띤 송이도 있고 보랏빛으로 익어가는 송이도 있다. 봉지를 씌워놓은 포도송이도 주렁주렁 매달려 수확의 때를 기다린다.

포도밭 너머로 집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고 나지막한 산이 마을을 포근하게 감싸고 있다. 마을 입구에는 오랜 세월 마을을 지켜온 느티나무 한 그루가 우뚝 서 있다. 수령 300년이 훌쩍 넘고 둘레가 3.30m나 되는 보호수다. 굵은 가지가 사방으로 뻗어 넉넉한 그늘을 만들고, 그 아래에는 정자가 자리한다. 이곳은 농사일을 하다 잠시 쉬어가거나 주민들이 둘러앉아 음식을 함께 먹으며 담소를 나누는 마을 사랑방이다.

마을 이름에는 그곳의 모습이 담겨 있기도 한다. 정자에 앉아 바라본 풍경은 마을 이름과도 제법 잘 어울린다. “동네가 아름답잖아요.” 주민들은 마을 이름을 설명하며 자연스럽게 마을 자랑을 더한다. 대미(大美)는 ‘큰 대(大)’에 ‘아름다울 미(美)’를 쓴다. 예전에는 ‘미동마을’로도 불렸다고 한다. 아름다운 마을 풍경 뿐 아니라 주민들의 마음씨가 비단처럼 곱다는 의미도 담겨 있다고 전해진다.

느티나무와정자

대미2리 마을에 자리한 느티나무와 정자.

 

대미2리에는 현재 50여 세대, 70여 명의 주민이 살고 있다. 대부분 60대 이상으로 90대 어르신도 5명이나 된다. 영천 이씨와 창녕 성씨가 오래전부터 터를 잡고 살아온 마을로 주민 대부분이 친인척이라 서로의 집안 사정을 훤히 알고 지낸다. 집안에 경사가 있거나 어려운 일이 생기면 서로 돕는 것이 자연스럽다. 최근에는 도시생활을 하다 조용한 곳을 찾아 대미2리로 들어오는 사람들도 생겼다. 빈집을 사서 정착한 외지인도 10가구 정도 된다. 새로 들어온 사람들도 금세 주민들과 어울린다. 외지인에 대한 텃세가 없는 것도 마을의 자랑이다.

마을 어르신들은 마을회관에서 일주일에 한 번 노인체조를 하며 건강을 챙긴다.
마을 어르신들은 마을회관에서 일주일에 한 번 노인체조를 하며 건강을 챙긴다.

300살 느티나무가 만든 그늘

주민들 모여 담소 나누는 사랑방

저수지 ‘대미제’ 야경도 자랑거리

마을 인근 개장 앞둔 ‘렛츠런파크’

농가 소득 증대·마을 홍보 기대감

마을 입구의 느티나무에는 대미2리의 시간이 쌓여있다. 느티나무가 자리한 곳은 과거 저수지 둑이 있던 자리다. 주변에는 팽나무들도 줄지어 있었지만 세월이 흐르면서 대부분 사라졌다. 오랜 세월 주민들의 삶과 함께해 온 느티나무는 마을의 역사와 공동체를 상징하는 나무이기도 하다. 이곳에서는 마을의 안녕을 기원하는 동제도 지낸다. 한동안 중단됐던 동제는 약 20년 전부터 다시 시작됐다. 예전에는 정월대보름에 지냈지만 지금은 설 전날 제를 올린다. 이장과 반장, 노인회장 등 마을 대표들이 중심이 돼 전통을 이어가고 있다.

익어가는포도2

달콤하게 익어가는 포도.

금호읍은 영천포도의 대표적인 주산지다. 일조량이 풍부하고 강수량이 비교적 적은 영천의 기후는 포도 재배에도 유리하다. 대미2리 역시 포도가 대표 농산물이다. 하지만 처음부터 포도마을이었던 것은 아니다. 예전에는 논농사가 중심이었고, 약 30년 전부터 포도 농사를 짓기 시작하면서 논이 하나둘 포도밭으로 바뀌었다.
 

빗물이 포도송이에 직접 닿는 것을 막아 안정적인 재배와 품질 관리에  도움을 주는 비가림 시설. 
빗물이 포도송이에 직접 닿는 것을 막아 안정적인 재배와 품질 관리에  도움을 주는 비가림 시설. 

 

시간이 흐르면서 포도밭의 모습은 예전과 달라졌다. 과거에는 별다른 시설 없이 노지에서 포도를 재배했지만 지금은 포도나무 위로 비를 막아주는 비가림 시설이 길게 이어진다. 포도는 비를 많이 맞으면 열매가 터지거나 병이 생겨 상품성이 떨어질 수 있다. 비가림 시설은 빗물이 포도송이에 직접 닿는 것을 막아 안정적인 재배와 품질 관리에 도움을 준다.

모든 농사가 그렇듯 포도농사도 계절마다 손이 많이 간다. 주민들은 초여름이 되면 더욱 바빠진다. 6월부터 포도 열매가 굵어지고 송이가 커지면서 알솎기와 봉지 씌우기 등 일일이 사람 손을 거쳐야 하는 작업이 몰리기 때문이다. 수확철에도 한꺼번에 전부 따는 것이 아니라 익는 정도에 따라 잘 익은 송이부터 나눠 수확한다. 수확이 끝났다고 일이 끝난 것이 아니다. 겨울에는 가지치기를 하고 봄부터는 포도나무의 생육 상태를 살피며 다음 수확을 준비한다.

샤인머스캣은 봉지 안에서 수확의 때를 기다리며 익어가고 있다. 
샤인머스캣은 봉지 안에서 수확의 때를 기다리며 익어가고 있다. 

 

마을에서 재배하는 포도 품종도 시대에 따라 달라졌다. 처음에는 캠벨 계열의 흑포도를 주로 재배했지만 이후 머루포도와 샤인머스캣 등으로 재배 품종이 다양해졌다. 특히 샤인머스캣은 한때 높은 가격을 받으며 농가의 효자 품종으로 꼽혔지만 이제는 사정이 달라졌다. 재배 농가가 전국적으로 늘면서 생산량이 많아졌고, 소비가 생산량을 따라가지 못하면서 가격도 떨어졌다. 품질에 대한 고민도 있다. 샤인머스캣은 충분히 익어야 특유의 당도와 향이 살아나는데 출하를 서두르면서 당도가 충분히 오르지 않은 포도가 시장에 나오는 경우도 생겼다. 이런 일이 반복되면서 샤인머스캣의 인기도 예전 같지 않다. 일부 농가는 샤인머스캣 대신 다른 품종으로 눈을 돌리고 있다.

포도값은 떨어져도 농사에 들어가는 비용 부담은 오히려 커졌다. 고령화로 일손을 구하기가 갈수록 어려워져 부족한 일손은 외국인 근로자의 도움으로 메우고 있지만 인건비 부담이 만만치 않다. 이 때문에 포도농사를 포기하는 농가도 하나둘 생기고 있다.

저수지 ‘대미제’에 해가 지고 마을 주택의 불빛이 물 위로 잔잔하게 비치고 있다.
저수지 ‘대미제’에 해가 지고 마을 주택의 불빛이 물 위로 잔잔하게 비치고 있다.

 

마을길을 따라 조금 내려가면 저수지 ‘대미제’가 자리하고 있다. 대미지라고 불리기도 한다. 과거 논농사를 지을 때 대미제는 농업용수를 공급하는 중요한 역할을 했다. 하지만 논농사의 비중이 줄고 지금은 포도밭마다 지하수 시설을 갖춰 필요한 물을 직접 끌어올려 사용하니 저수지 물을 이용하는 일도 크게 줄었다. 농업용수로서의 역할은 줄었지만 대미제는 여전히 주민들이 자랑하는 마을 풍경 중 하나다. 해가 지고 건너편 전원주택에 하나둘 불이 켜지면 그 불빛이 물 위로 비쳐 아름다운 야경을 만든다. 저수지 가장자리에서는 여유롭게 낚싯대를 드리운 사람의 모습도 간간이 볼 수 있다.

렛츠런파크 영천 개장에 앞서 첫 실전형 모의경주에 출전한 경주마들이 힘차게 질주하고 있다. 렛츠런파크 영천 제공. 
렛츠런파크 영천 개장에 앞서 첫 실전형 모의경주에 출전한 경주마들이 힘차게 질주하고 있다. 렛츠런파크 영천 제공. 

조용한 대미2리에도 조금씩 변화의 바람이 불고 있다. 산 너머에 오는 13일 개장을 앞둔 렛츠런파크 영천이 자리하고 있기 때문이다. 사업부지에 대미리 일부가 포함돼 있어 마을과 전혀 무관한 시설도 아니다. 아직 주민들의 일상이 크게 달라진 것은 없지만 새로운 시설이 들어서는 데 대한 작은 기대는 있다. 그곳을 찾는 사람이 늘어나면 마을에서 생산한 포도를 비롯한 농산물을 알릴 기회가 생길 수 있기 때문이다. 지역 농산물을 판매하는 임시 부스를 운영하는 방안에 대한 이야기도 오갔지만 아직은 상시 경주가 열리는 것이 아니라 당장 큰 효과를 기대하기는 어렵다. 렛츠런파크 앞 도로도 현재 확장공사가 진행중이라 마을 접근성도 더 좋아질 것으로 보인다. 2단계 사업으로 공원과 레저시설까지 조성되면 오가는 사람들이 늘어나 마을을 알리고, 마을에서 생산한 농산물을 판매할 기회도 더 많아질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오래된 느티나무 아래 정자에 주민들이 모여 이야기를 나누고 철마다 포도밭을 돌보며 살아가는 대미2리. 산 너머 새로운 시설이 들어서고 주변의 모습도 조금씩 달라지고 있지만 마을의 일상은 여전히 조용하고 평온하다. 주민들은 이름에 담긴 ‘아름다움’처럼 지금의 정겨운 마을 풍경을 지켜가면서 새로운 변화를 천천히 받아들이고 있다.

서영진·진소현기자
 

<우리 마을은>

 

성환주 이장
성환주 이장

 

성환주 이장 “끈끈한 이웃사촌들이 일군 평온한 일상”

“우리 마을은 조용하고 화목한 게 가장 큰 자랑입니다. 특별히 내세울 게 있는 마을은 아니지만 주민들이 서로 잘 지내고 외지에서 들어온 사람들도 금방 어울릴 수 있는 마을입니다.”

성환주 이장은 대미리의 가장 큰 자랑으로 ‘화목함’을 꼽았다. 마을에서 나고 자란 성 이장은 오랫동안 직장생활을 하다 다시 고향으로 돌아왔다. 마을 사정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그는 2년 째 이장직을 맡아 주민들의 크고 작은 일을 살피고 있다.

오랫동안 한 마을에서 함께 살아온 주민들은 한 집 건너 친척이라고 할 만큼 가까운 사이라 마을에 큰 갈등이 생기는 일도 드물다. 서로의 집안 사정을 훤히 알고 경조사가 생기면 자연스럽게 힘을 보탠다. 새로 마을에 들어온 사람들과도 별다른 거리감 없이 어울린다.

대미리가 오랫동안 지켜온 또 하나의 특징은 ‘조용함’이다. 마을을 둘러싼 산과 들이 외부의 소음을 막아주고 앞쪽으로는 들판과 저수지가 펼쳐져 있다. 성 이장은 특별한 사건·사고 없이 평온한 일상이 이어지는 것도 마을의 장점이라고 했다.

최근 마을 인근에 렛츠런파크 영천이 들어서면서 마을에도 변화에 대한 기대감이 커지고 있다. 오는 9월 문을 열고 향후 2단계 사업을 통해 공원과 레저시설까지 조성돼 방문객이 늘어나면 대미2리 마을에서 생산한 농산물을 알릴 기회도 많아질 것으로 보고 있다.

성 이장이 마을을 위해 바라는 것도 거창한게 아니다. 지금은 대미제 입구에 작은 도랑이 있어 둑 위로 바로 올라갈 수가 없다. 주민들이 저수지 둑을 따라 산책하며 대미제 풍경을 편하게 바라볼 수 있도록 도랑을 가로지르는 작은 다리 하나가 놓였으면 하는 것이 그의 소박한 바람이다.

“지금처럼 조용하고 화목하게 살면서 주민들이 편안하게 지낼 수 있는 마을을 만들고 싶습니다.”

진소현기자 sohyun@idaegu.co.kr

<가볼만한 곳>

렛츠런파크영천관람대와조형물

렛츠런파크 영천.  렛츠런파크 영천 제공. 

◇렛츠런파크 영천…전국서 가장 큰 경마공원

렛츠런파크 영천은 경마 관람과 함께 공원과 수변공간을 둘러볼 수 있는 복합레저공간이다. 과천과 제주, 부산·경남에 이어 국내 네 번째이자 경북권에서는 처음 들어서는 경마공원이다. 145만2천813㎡, 약 44만 평 규모로 전국 최대 규모를 자랑한다.

금호읍 일대에서 청동기 시대 유물인 마형대구가 출토됐고, 조선시대에는 군위, 경주, 경산, 울산 일대를 관할하던 역참이 자리했던 영천은 말과 인연이 깊은 고장이다.

오랜 시간 말과 함께해온 영천에 새로운 말 문화공간으로 들어서는 렛츠런파크는 금호읍 성천리·대미리와 청통면 대평리 일원에 자리하며 오는 13일 문을 연다.

경마를 관람하는 관람대는 지하 1층~지상 4층 규모다. 한옥의 처마와 마당을 모티브로 한 계단식 구조로, 최대 5천 명을 수용할 수 있다. 관람대 앞으로는 2면의 모래 경주로가 펼쳐진다. 경주마가 머무는 100칸 규모의 마사와 동물병원 등도 갖췄다.

국내에서 처음 도입되는 ‘권역형 순회경마’도 이곳에서 만날 수 있다. 경주마자원은 부산경남에 상주하고 경마일마다 영천으로 이동해 경주를 치른다. 금요일과 토요일에는 스크린경마가 열리고 일요일에는 실제 경주마들이 경주로를 달린다.

경주로 안쪽은 대규모 친환경 수변공원으로 조성됐다. 방문객들이 산책하며 주변 풍경을 둘러보거나 쉬어갈 수 있고 가족 단위 방문객을 위한 체험·여가 프로그램도 마련된다.

앞으로 2단계 사업을 통해 산책로와 캠핑장 등 레저·문화시설이 추가로 들어서면 경마 관람 뿐 아니라 휴식과 여가를 즐길 수 있는 공간이 될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