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산리마을드론

천왕산에서 이어지는 산줄기를 따라 길게 자리한 청도군 풍각면 차산리. 산 아래로 논과 밭, 비닐하우스가 펼쳐지고 그 사이로 마을이 자리한다. 김선국 사진작가

꽹과리 소리가 울리자 장구와 북이 장단을 맞춘다. 흥겨운 가락이 이어지면, 사람들은 장단에 맞춰 어깨를 들썩인다. 청도군 풍각면 차산리에서 농악은 오래전부터 마을 사람들의 삶과 함께해 왔다.

과거에는 정월이면 농악패가 집집마다 돌며 지신밟기를 했고, 정월대보름에는 달집을 태우며 풍년을 빌었다. 여름철 고된 논매기를 마친 뒤에도 농악을 앞세우고 마을로 돌아와 밤늦도록 흥을 나눴다. 직접 농악에 참여하지 않는 주민들도 농악패를 따라다니며 춤을 추는 등 마을 전체가 농악에 어우러졌다. 이처럼 마을의 일상과 함께했던 농악이 바로 ‘차산농악’이다.

차산리는 천왕산에서 이어지는 산줄기를 따라 길게 자리한 마을이다. 산 아래로 논과 밭, 비닐하우스가 펼쳐지고 그 사이로 집들이 드문드문 들어서 있다. 마을 앞 들판에서 주위를 바라보면 구릉과 산등성이가 둥글게 들판을 에워싸고 있는데, 그 모습이 수레바퀴를 닮았다고 해 ‘차산(車山)마을’이라는 이름이 붙었다고 전해진다.

차산은 주민들 사이에서 ‘신라고촌’으로도 전해지는 오래된 마을이다. 마을 일대에 지석묘군과 옛 절터 등이 남아 있어 오래전부터 사람들이 이곳에 터를 잡고 살았던 것으로 추정된다. 현재와 같은 마을이 형성된 것은 임진왜란 이후로 전해지며, 김녕김씨를 시작으로 밀양박씨와 동래정씨, 경주김씨 등이 차례로 들어와 정착했다고 한다. 지금은 여러 성씨가 함께 살아가고 있다.

차산농악 단원들이 꽹과리와 장구, 북 등을 연주하며 흥겨운 가락을 이어가고 있다.
차산농악 단원들이 꽹과리와 장구, 북 등을 연주하며 흥겨운 가락을 이어가고 있다.

 

오랜 마을의 역사만큼이나 차산농악의 뿌리도 깊다. 차산리에서는 오래전부터 농악이 주민들의 공동체 생활과 함께해 왔으며, 1933년에는 차산1·2리 주민 18명으로 농악대가 꾸려졌다는 기록이 전한다.

차산농악이 전국적으로 알려진 데는 ‘불세출의 상쇠’로 불린 김오동의 역할이 컸다. 1922년 차산리에서 태어난 김오동은 어린 시절부터 농악을 익혔고, 이후 상쇠로 활동하며 뛰어난 쇠가락과 소리로 명성을 얻었다. 차산농악은 1980년 경상북도 무형문화재 제4호로 지정됐으며, 김오동은 이후 20여 년간 예능보유자로 활동하며 차산농악의 전승을 이끌었다.

왼쪽부터 쇠 예능보유자 김태훈, 북 예능보유자 조일환
왼쪽부터 쇠 예능보유자 김태훈, 북 예능보유자 조일환

 

2002년 김오동이 세상을 떠난 뒤에는 김태훈과 조일환 등 예능보유자들이 가락을 이어받아 차산농악의 맥을 잇고 있다.

방학을 맞아 차산농악전수관을 찾은 대학생들이 차산농악의 가락과 연주법을 배우고 있다.
방학을 맞아 차산농악전수관을 찾은 대학생들이 차산농악의 가락과 연주법을 배우고 있다.

 

차산농악전수관에서는 주민들을 대상으로 풍물교실을 운영하며 농악의 기본 가락과 지신밟기, 농요 등을 가르친다. 방학이면 풍물을 배우려는 대학생들도 찾아온다. 10~15일 정도면 기본적인 가락을 익힐 수 있지만 제대로 연주하기 위해서는 이후에도 꾸준한 연습이 필요하다. 이곳에서 행사나 대회를 앞둔 단원들이 모여 연습하기도 한다.

밀양박씨 재실로 오르는 길목에 자리한 수령 500년가량으로 추정되는 이팝나무(왼쪽). 봄이면 나무 전체를 뒤덮을 만큼 하얀 꽃을 피운다.
밀양박씨 재실로 오르는 길목에 자리한 수령 500년가량으로 추정되는 이팝나무(왼쪽). 봄이면 나무 전체를 뒤덮을 만큼 하얀 꽃을 피운다.

 

애지중지 지켜온 500살 이팝나무 

봄마다 흐드러진 하얀 꽃 피워 장관

마을 주소득원은 벼·미나리 농사

폐교된 학교서 2년마다 총동창회

각지 졸업생 한자리 모여 화합의 장

밀양박씨 재실로 오르는 길목에는 오래된 이팝나무 한 그루가 자리하고 있다. 주민들이 수령 500년가량으로 추정하는 보호수로, 봄이면 나무 전체가 하얗게 뒤덮일 만큼 꽃을 풍성하게 피워왔다. 그러나 10여년 전부터 나무가 쇠약해지면서 한동안 꽃을 제대로 피우지 못했다. 이후 썩은 부분을 치료하고 약제를 살포하는 등 관리를 이어오면서 최근 다시 흰 꽃을 가득 피우기 시작했다. 꽃이 만개할 때면 이팝나무를 촬영하려는 전국의 사진작가들이 찾아오기도 한다.

2025천왕기중수식3

2025년 2월 15일, 새 천왕기를 제작하고 이팝나무 아래에서 ‘천왕기 중수식’을 열었다.

 

지난해에는 이 나무 아래에서 농악 소리가 울렸다. 차산농악이 ‘무형문화재’에서 ‘무형유산’으로 명칭이 바뀐 것을 계기로 새 천왕기를 제작하고 ‘천왕기 중수식’을 연 것이다. 천왕기는 긴 대나무에 깃을 단 것으로, 차산농악이 대회나 큰 행사에 나설 때 앞세우는 깃발이다. 과거 정초가 되면 풍각면의 여러 마을과 고개 너머 경남 창녕의 마을들이 천왕기를 들고 나와 기싸움을 벌였다. 많을 때는 15~16개 마을이 참여했으며, 천왕기를 앞세운 행렬에는 농악단과 마을 사람들이 뒤따랐다. 일제강점기와 한국전쟁을 거치며 점차 자취를 감췄지만 차산에서는 비교적 오래 그 전통이 이어졌다.

지신밟기4

차산농악 단원들이 천왕기를 앞세우고 집집마다 지신밟기를 하고 있다.

 

중수식에서는 긴 대나무를 흰 천으로 감싸 ‘깃옷’을 입힌 뒤 천왕기에 마을신을 모셨다. 이후 차산농악 단원들과 마을 사람들이 천왕기를 앞세워 집집마다 지신밟기를 하며 나쁜 기운을 누르고 복이 깃들기를 빌었다.

과거 마을 사람들이 글을 배우고 공부하던 곳으로 전해지는 옛 차산서원, 현재는 재실의 성격을 띤 공간으로 봄이면 이곳에서 춘제를 지낸다.
과거 마을 사람들이 글을 배우고 공부하던 곳으로 전해지는 옛 차산서원, 현재는 재실의 성격을 띤 공간으로 봄이면 이곳에서 춘제를 지낸다.

 

차산마을에는 오래된 배움과 제례의 흔적도 곳곳에 남아 있다. 마을에서 석통으로 넘어가는 길목에 자리한 옛 차산서원은 과거 마을 사람들이 글을 배우던 곳으로 현재는 재실의 성격을 띤 공간으로 남아 봄이면 춘제를 지낸다.

폐교된 풍각남부초등학교 뒤편에 자리한 밀양박씨 재실은 과거 동네 어린이들이 훈장에게 한문을 배우던 곳으로 전해진다.
폐교된 풍각남부초등학교 뒤편에 자리한 밀양박씨 재실은 과거 동네 어린이들이 훈장에게 한문을 배우던 곳으로 전해진다.

 

옛 풍각남부초등학교 뒤편의 밀양박씨 재실도 한때 배움의 공간이었다. 동네 어린이들이 이곳에 모여 훈장에게 한문을 배웠다고 한다. 높은 곳에 자리해 건너편 덕양리와 그 뒤로 이어지는 산자락까지 한눈에 들어온다. 가을이면 문중 사람들이 모여 묘사를 지낸다.

차산리미나리농가1

차산마을에서 재배한 미나리가 수확을 앞두고 싱싱하게 자라고 있다.

 

현재 차산리에는 약 75가구, 100여 명이 살고 있다. 가구 수 자체는 예전과 크게 달라지지 않았지만 한 집에 두세 명씩 살던 때와 달리 혼자 생활하는 노인이 많아지면서 주민 수는 크게 줄었다. 농사를 짓는 주민들도 대부분 고령층이다. 주민들은 주로 벼농사를 짓지만 비닐하우스마다 자라는 미나리도 쉽게 볼 수 있다. 지금은 마을의 주요 작물 가운데 하나지만 처음부터 미나리를 많이 키웠던 것은 아니다. 30~40년 전에는 수박 농사를 많이 지었고 이후에는 비닐하우스에서 고추를 키우는 농가가 늘었다. 약 25년 전부터는 미나리로 작목을 바꾸는 농민들이 하나둘 생겨났다.

작목이 바뀐 데에는 현실적인 이유가 있었다. 겨울철 하우스 고추는 온도를 유지하기 위해 계속 보일러를 가동해야 했다. 가격이 좋을 때는 난방비와 인건비를 들이고도 수익이 남았지만 전체 생산량이 늘어 가격이 떨어지면 기름값조차 건지기 쉽지 않았다. 반면 미나리는 시설을 갖추면 난방비 부담이 비교적 적었다.

차산마을미나리

차산마을 미나리는 아삭한 식감으로 제철이면 찾는 사람이 많다.  

미나리는 주로 12월부터 이듬해 4월 말까지 수확한다. 한 번 베어도 다시 자라 한 철 동안 여러 차례 거둘 수 있다. 최근에는 종묘를 저온창고에 약 40일간 보관해 인위적으로 겨울을 나게 한 뒤 다시 심는 방법도 쓴다. 예전처럼 물을 깊게 채우기보다 물 높이를 낮춰 줄기가 물 밖으로 나오도록 키운다. 이렇게 재배한 차산미나리는 아삭한 식감 덕분에 제철이면 찾는 사람이 많다.

한때 마을의 아이들이 뛰놀던 풍각남부초등학교는 1994년에 문을 닫았다. 현재는 한 조각가가 건물을 임차해 교실 일부를 생활·작업 공간으로 활용하고 있다. 운동장 곳곳에는 조각 작품을 볼 수 있다.

풍각남부초등학교 총동창회에서 동문들이 농악을 즐기며 옛 추억을 나누고 있다.
풍각남부초등학교 총동창회에서 동문들이 농악을 즐기며 옛 추억을 나누고 있다.

아이들의 발길은 끊겼지만 폐교 운동장은 2년에 한번 사람들로 북적인다. 마을을 떠나 대구와 부산, 서울 등지에 자리 잡은 졸업생들이 총동기회를 위해 이곳을 찾기 때문이다. 총동기회가 열리는 날이면 전국 각지에 흩어져 살던 동문들이 운동장에 모여 기수별로 부스를 차리고 음식을 나눠 먹으며 지난 시간을 떠올린다. 행사가 시작되기 전에는 차산농악 단원들과 동문들이 함께 악기를 메고 운동장을 돌기도 한다. 평소 조용한 폐교 운동장에 이날만큼은 다시 꽹과리와 북소리, 사람들의 목소리가 울려 퍼진다.

박효상·진소현기자

<우리 마을은>

 

김상일 이장
김상일 이장

 

김상일 이장 “젊은 농사꾼 들어와 활기 되찾았으면”

“젊은 사람들이 농사지으러 많이 들어오면 좋지요. 마을에 젊은 일꾼이 있어야 동네도 계속 잘 돌아갈 수 있으니까요.”

차산리에서 나고 자란 김상일 이장은 한때 고향을 떠나 생활하다 다시 마을로 돌아왔다. 지금은 농사를 지으며 이장으로 마을의 크고 작은 일을 챙기고 있다. 김 이장처럼 차산리를 떠났다가 돌아와 정착한 주민이 몇몇 있지만 새롭게 마을로 들어오는 젊은 사람은 많지 않다.

김 이장이 요즘 가장 많이 신경 쓰는 일은 고령의 주민들을 살피는 것이다. 틈틈이 경로당을 찾아 어르신들의 안부를 확인하고 형편이 어려운 주민이 있으면 행정기관에서 받을 수 있는 지원이 없는지 알아보는 것도 그의 몫이다.

주민들의 평균 연령이 높아지면서 마을 공동체를 유지하는 일도 점점 쉽지 않아지고 있다. 설과 추석을 앞두고 대청소를 하거나 길가와 하천의 풀을 베고, 재활용품을 모으는 일에도 일손이 필요하지만 실제로 나설 수 있는 주민은 많지 않다. 결국 마을에서 젊은 축에 속하는 50대 후반의 주민들이 여러 일을 도맡는 경우가 많다.

김 이장이 바라는 차산리의 미래에는 ‘젊은 농사꾼’이 빠지지 않는다. 농촌에서 살아보려는 젊은 사람들이 들어와 주민들과 함께 마을을 꾸려갔으면 하는 마음이다. 특히 농사에 뜻이 있는 청년이라면 차산에서 새로운 가능성을 찾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는 마을에서 새롭게 농촌 생활을 시작하려는 청년들이 도전해 볼 만한 작목으로 미나리를 꼽는다. 실제 마을의 젊은 농업인들은 미나리 농사로 비교적 높은 소득을 올리고 있다고 한다. 청년 농업인에게는 농업 정착을 돕는 각종 지원 제도가 있고 농민사관학교 등을 통해 농업을 배울 기회도 있다고 설명한다. 또 차산농악이 마을을 대표하는 전통문화인 만큼 이를 배우고 이어갈 젊은 사람들의 발길도 이어지길 바란다. 농악을 배우고 이어가려는 젊은 사람들이 찾아와 주민들과 어울린다면 마을에도 자연스럽게 새로운 활기가 생길 수 있다는 기대다.

“농촌에서는 젊은 사람이 한 명, 한 명 정말 귀합니다. 농사에 뜻이 있는 젊은 사람들이 들어와 같이 살아주면 좋겠어요. 차산농악도 계속 이어지고, 고향을 떠난 사람들도 다시 돌아오는 마을이 됐으면 합니다.”

진소현기자 sohyun@idaegu.co.kr

<가볼만한 곳>

 

청도읍성

청도읍성 

◇청도읍성…성곽길 따라 옛 청도로 시간여행

청도군 화양읍에 자리한 청도읍성은 고려시대부터 존재한 것으로 전해지는 성곽이다. 지방 관아가 자리한 고을을 보호하기 위해 만들어졌으며 현재 경상북도 기념물 제103호로 지정돼 있다. 조선 중기 전란을 겪으며 훼손되고 일제강점기에도 성벽 일부가 철거됐지만 이후 복원 사업을 거쳐 옛 모습을 되찾아가고 있다.

길게 이어진 성곽은 청도읍성의 가장 큰 볼거리다. 높지 않은 성벽을 따라 천천히 걸으며 주변 풍경을 내려다볼 수 있어 역사 유적이면서도 산책 명소로 사랑받는다. 성곽 주변에는 조선시대 얼음을 보관했던 청도 석빙고와 옛 관아 건물인 도주관 등 문화유산도 자리하고 있어 함께 둘러보기 좋다.

넓게 트인 성곽길을 거닐며 청도의 옛 시간을 느껴볼 수 있는 곳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