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천-옛날솜씨마을] 옛날 솜씨로 빚은 맛·멋, 알짜배기 관광자산이 되다

무흘구곡의 맑은 물이 산자락을 따라 흐르고, 천년고찰 청암사가 깊은 숲 속에 고즈넉이 자리한 곳. 인현왕후의 이야기가 깃든 수도산 자락을 따라 들어서면 오래된 산골마을 하나가 모습을 드러낸다.
경북 김천시 증산면 평촌리 ‘옛날솜씨마을’이다. 평촌리는 산촌이지만 주변에 비교적 넓은 들이 있어 붙은 이름이다. 옛날솜씨마을이 자리한 곳 역시 넓은 들을 끼고 있어 예부터 ‘장뜰’이라 불렸다. 청암사는 조선 숙종 때 폐위된 인현왕후가 머물면서 복위를 기원했다는 이야기가 전해지는 곳이다. 자연과 역사, 불교문화가 어우러진 이 산골마을에는 주민들의 삶 속에서 오랫동안 이어져 온 손맛과 솜씨가 살아 있다.

옛날솜씨마을의 가장 큰 자산은 화려한 관광시설이 아니다. 주민들이 직접 농사를 짓고, 수확한 농산물로 음식을 만들며, 평생 익혀온 솜씨를 방문객들에게 전하는 것이다.
이곳에서는 계절마다 마을에서 직접 거둔 재료로 김치를 담그고 장을 빚는다. 떡메를 쳐 쫀득한 인절미를 만들고, 김밥을 직접 말아 맛보기도 한다. 산골 주민들에게는 평범한 일상이지만 도시민과 외국인들에게는 특별한 농촌체험이 된다.

주민들의 평범한 솜씨가 마을의 자산으로 거듭나게 된 것은 2003년 농촌진흥청의 농촌전통테마마을로 지정되면서부터다. 주민들은 자신들이 가장 잘할 수 있는 일을 찾기 시작했다. 누구는 두부를 잘 만들고, 누구는 술을 잘 빚고, 누구는 바느질과 공예에 솜씨가 있었다. 이런 솜씨들은 특별히 배운 기술이라기보다 예로부터 짚을 엮어 생활용품을 만들고, 집안의 대소사마다 음식을 장만하며 자연스럽게 익힌 것들이었다. 그렇게 생활 속에서 이어져 온 주민들의 솜씨는 마을의 체험 프로그램으로 거듭났다.
두부와 떡, 전통 고추장 등 음식 만들기를 비롯해 짚풀공예와 누름꽃공예, 목공예, 천연염색 등 종류도 다양하다. 주민 각자가 가진 옛 솜씨를 모았다는 뜻에서 마을 이름도 ‘옛날솜씨마을’로 지었다.

여러 체험 프로그램 가운데 특히 인기가 있는 것은 인절미 만들기다. 찹쌀을 쪄 떡판에 올리고 커다란 떡메를 들어 힘껏 내리친다. “쿵!” 떡메를 내려칠 때마다 체험장에는 웃음소리가 퍼진다. 한 사람이 떡메를 치면 다른 사람이 떡을 뒤집어주고, 다시 떡메로 내려치는 과정을 반복한다. 찰기가 생기면 떡을 잘라 콩고물을 묻힌다.
기계가 사람의 손을 대신하는 시대에 직접 떡메를 쳐서 만든 인절미는 아이들에게는 신나는 놀이가 되고, 어른들에게는 어린 시절의 추억을 떠올리게 한다. “떡은 힘만 준다고 되는 게 아이라예. 잘 뒤집어 줘야 찰지게 돼요.” 마을 어르신들의 설명이 더해지면 떡메치기는 단순한 음식 만들기를 넘어 세대와 세대를 잇는 문화체험이 된다.

겨울철이 다가오면 마을은 또 한 번 분주해진다. 마을에서 직접 재배한 배추와 고추를 활용한 김장체험 때문이다. 밭에서 자란 배추를 수확하고 손질해 절인 뒤 마을에서 준비한 고춧가루와 양념을 버무려 김치를 담근다. 배추를 어떻게 절이는지, 양념은 어떤 비율로 넣는지, 김치의 맛은 어떻게 맞추는지까지 평생 김장을 해온 어르신들이 직접 알려준다. 도시에서는 완성된 김치를 사 먹는 것이 익숙하지만 이곳에서는 배추가 김치가 되는 전 과정을 직접 경험할 수 있다. 지역에서 생산한 고춧가루를 활용한 전통 고추장 만들기도 대표적인 음식 체험이다. 최근에는 김밥 만들기도 새로운 체험 프로그램으로 인기를 끌고 있다.

옛날솜씨마을의 음식솜씨에는 특별한 배경이 있다. 평촌리는 오랫동안 청암사와 인연을 맺고 살아온 사하촌이었다. 청암사에 큰 행사가 있으면 주민들이 음식을 준비하고 여러 일을 도왔다.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사찰음식과 전통음식 만드는 법을 익혔다. 감자부각도 그중 하나다.
마을 어르신들이 평생 만들어온 음식은 이제 체험객들에게 전해지는 ‘마을의 문화유산’이 됐다. 김장김치 한 포기, 고추장 한 통, 인절미 한 접시에도 이 마을 사람들이 살아온 세월과 농촌의 생활방식이 담겨 있다.
옛날솜씨마을의 체험 프로그램을 이끌어가는 사람들은 대부분 고령의 주민들이다. 두부를 잘 만드는 어르신은 두부 만들기를 맡고, 떡을 잘 만드는 어르신은 인절미 체험을 진행한다. 저마다 자신이 가장 잘하는 솜씨로 체험객들을 맞는다. 평생 해온 일이 누군가에게는 귀중한 배움이 되고, 그 솜씨가 소득으로 이어지는 것도 어르신들에게는 큰 보람이다.
체험객이 찾아오면서 어르신들의 생활에도 활력이 생겼다. 아침이면 마을 사무실에 모여 서로 안부를 묻고 체험객을 맞을 준비를 한다. 체험마을이 자연스럽게 어르신들의 사랑방이자 공동체 공간 역할까지 하고 있는 셈이다.

마을 골목길을 걷다 보면 또 하나의 재미를 만날 수 있다. 집집마다 걸려있는 문패는 흔히 볼 수 있는 정형화된 문패와 달리 집주인의 삶과 이야기를 담고 있다. ‘금잔디집, 언제나 신혼같이’, ‘술 빚는 집, 우리 할배가 오토바이 타는 걸 좋아했지’ 등 하나하나 읽어보는 재미가 있다. 대학생 봉사자들이 주민들과 함께 생활하며 직접 이야기를 듣고 만든 문패라 더욱 의미가 있다.
직접 떡메 쳐 만든 인절미 맛보고
겨울엔 마을서 키운 농산물로 김장
새로 시작한 김밥 만들기도 인기
도시민·외국인 체험객 발길 줄이어
최근에는 옛날솜씨마을을 찾는 외국인 관광객들의 발길도 이어지고 있다. 김천의 새로운 관광 콘텐츠로 떠오른 김밥축제와 연계해 서울지역 여행사 등과 협력하면서 외국인 체험단의 방문이 늘고 있다. 김밥 만들기를 비롯해 김장과 고추장·인절미 만들기 등 마을의 음식 문화를 직접 체험하는 일정이다. 외국인 관광객들에게는 단순히 유명 관광지를 둘러보는 여행과는 또 다른 경험이다. 마을 어르신과 함께 한국 음식을 직접 만들어보고, 산골마을의 자연과 역사까지 만나는 ‘생활문화 관광’이다.

특히 김밥은 외국인들이 한국의 음식문화를 쉽고 재미있게 경험할 수 있는 좋은 체험거리다. 최근에는 한 번에 100명이 넘는 외국인 체험단이 방문할 정도로 김밥 만들기 체험의 인기가 높다. 김 위에 밥을 펴고 다양한 재료를 올려 직접 말아보는 과정은 한국어를 몰라도 누구나 쉽게 따라 할 수 있다. 직접 싼 김밥을 맛보는 것도 체험의 재미를 더한다. 김밥과 함께 나온 김치를 맛본 한 외국인은 “역시 김밥에는 김치가 최고야”라고 말하기도 했다.
빠르게 사라져 가는 농촌의 생활문화와 음식문화가 주민들의 손끝에서 다음 세대로 전해지고 이제는 외국인 관광객에게까지 그 폭을 넓혀가고 있다. 무흘구곡의 청정 산골에서 이어져 온 할매·할배의 ‘옛날 솜씨’는 이렇게 김천의 자연과 역사, 음식과 사람을 연결하는 새로운 문화관광 자원이 되고 있다.
정상진기자·지담 문화콘텐츠연구가
<우리 마을은>

김치조 운영위원장·박정미 사무국장“세대를 잇는 문화체험마을 조성 최선”
“어르신들이 평생 살아오며 익힌 손맛과 솜씨가 우리 마을의 가장 큰 보물입니다. 평범한 일상 속에서 이어온 ‘옛날 솜씨’를 더 많은 사람들에게 알리고 싶습니다.”
옛날솜씨마을은 김치조 운영위원장과 박정미 사무국장 부부가 운영을 맡고 있다. 김 위원장이 마을 운영의 전반적인 방향을 잡는 역할을 한다면, 박 사무국장은 체험 프로그램 운영과 체험객 응대 등 현장 실무를 꼼꼼하게 챙긴다.
박 사무국장은 고향을 떠나 오랫동안 외지에서 생활하다 부모님의 병환을 계기로 고향으로 돌아왔다. 처음에는 부모님을 돌보는 것이 우선이어서 체험마을 운영에는 큰 관심이 없었다. 그러다 2012년부터 체험마을 운영에 참여하게 됐다.
막상 일을 시작하고 보니 쉽지만은 않았다. 어르신들이 가진 솜씨는 뛰어났지만 체험객을 맞는 일은 또 다른 문제였다. 박 사무국장과 마을 어르신들과의 생각 차이를 좁히는 데도 꽤 시간이 걸렸다.
박 사무국장은 전국의 농촌체험 관련 교육을 찾아다니며 위생과 안전관리, 체험객 응대 등을 배웠고, 이를 하나씩 마을 운영에 적용해 나갔다.
최근에는 서울지역 여행사 등과 연계한 체험여행이 활발해지면서 옛날솜씨마을을 찾는 외국인 방문객도 크게 늘었다. 한 번에 60명에서 많게는 120여 명이 마을을 찾을 정도다. 특히 직접 김밥을 만들어 맛보는 체험은 외국인들에게 인기가 높다.
“한국말을 몰라도 김밥은 만드는 과정을 보고 쉽게 따라 할 수 있어요. 직접 만든 김밥을 맛보면서 정말 즐거워합니다. 김밥과 함께 내놓은 마을 김치를 먹어본 한 외국인이 ‘역시 김밥에는 김치가 최고야’라고 하는데 우리 음식의 매력을 알아주는 것 같아 뿌듯했어요”
두 사람이 무엇보다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어르신들의 솜씨가 여기서 끊기지 않도록 하는 것이다.
김장과 장 담그기 등 어르신들이 오랜 세월 살아오면서 익힌 음식과 생활의 솜씨가 누군가에게는 특별한 문화체험이 되는 만큼 이를 다음 세대에도 이어가고 싶다는 바람이다. 주민들의 고령화로 체험을 진행할 사람을 찾는 일도 앞으로 풀어야 할 과제다.
“옛날솜씨마을에 오시면 구경만 하지 말고 직접 손으로 만들어 보세요. 김천의 산골에서 우리 음식과 옛 생활문화를 느끼고, 좋은 추억까지 담아가셨으면 합니다.”
지담 문화콘텐츠연구가
<가볼만한 곳>

◇인현왕후길…왕후의 이야기 깃든 힐링숲길
인현왕후길은 인현왕후가 청암사에 머물던 시절 수도암을 오가던 길을 옛 문헌 등을 바탕으로 복원한 숲길이다. 약 9㎞에 이르는 길은 해발 500~800m 사이의 산길을 오르내리지만 비교적 완만하게 이어져 걷기 여행지로 사랑받고 있다. 울창한 숲 사이로 이어지는 길을 걷다 보면 계절마다 다른 산의 표정을 만날 수 있다. 단순한 트레킹 코스라기보다 인현왕후의 이야기가 깃든 역사길이라는 점에서 특별하다.
불영산 청암사는 수도산 자락에 자리한 천년고찰이다. 특히 조선 숙종 때 인현왕후가 폐위된 뒤 이곳에 머물며 복위를 기원했던 사찰로 알려져 있다. 고즈넉한 산사의 분위기와 계곡을 따라 흐르는 맑은 물, 울창한 숲이 어우러져 산중 여행의 운치를 느낄 수 있다.

수도산 깊은 곳에 자리한 고찰 수도암은 인현왕후길의 종점에서 역사적 의미를 더해준다. 산사를 둘러싼 고요한 풍경은 일상의 번잡함에서 벗어나 잠시 자신을 돌아보기에 좋다.
청암사에서 인현왕후길을 따라 수도암으로 이어지는 여정은 ‘왕후의 이야기와 숲, 산사와 계곡’을 한 번에 만나는 여행길이다.
출처: 대구신문 원문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