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송-대전2리] 아이들 떠난 폐교에 거장의 예술혼 꽃피우다

1966년 피카소를 비롯한 세계적인 작가들이 참가한 프랑스 망통회화비엔날레에서 대상을 받은 한국 화가가 있다. 프랑스 미술평론가 가스통 딜은 그를 동서양 문화를 조화롭게 융합한 유일무이한 예술가로 평가했다. 바로 한국 추상미술의 선구자 남관(1911~1990) 화백이다. 그의 고향은 청송이다. 그의 이름을 딴 남관생활문화센터가 청송군 부남면 대전2리에 있다. 남관생활문화센터는 옛 대전초등학교를 리모델링해 만든 문화공간이다. 대전초는 학생 수 감소로 2013년 제65회 졸업생 1명을 마지막으로 문을 닫았다. 학교 건물은 지금은 남관의 예술을 알리고 지역민들이 문화를 배우고 즐기는 남관생활문화센터로 변신했다.

대전2리는 예로부터 '한앞마을'로 불렸다. 마을 앞에 넓은 들이 펼쳐져 있어 붙은 이름으로 마을 자체가 크다는 의미도 담겨있다. 현재 110가구에 190명 정도가 살고 있으며 평균 연령은 70세다. 주민들은 주로 사과와 고추농사를 짓는다.

마을길 옆 과수원에서는 추석을 앞둔 사과가 맛이 들기를 기다리며 숨고르기 중이고, 고추밭에서는 주민들이 뙤약볕 아래 잘 익은 고추를 수확하느라 바쁘다. 과거 청송은 오지로 손꼽히던 곳이지만 영천과의 경계에 있는 노귀재에 이어 현동면으로 넘어가는 삼자현에도 터널이 뚫리면서 포항·대구 방면으로 오가는 길이 한결 수월해졌다. 교통이 편리해지면서 대전2리에도 귀농·귀촌인이 들어오고 있으며 이웃 면에서 이주해 오는 주민들도 있다.

경주정씨 집성촌인 마을 안쪽에는 입향조인 정구 선생을 모신 화수재(花樹齋)가 자리한다. 1745년 건립된 화수재는 처음에는 서원의 역할도 했으나 세월이 흐르면서 퇴락했고 1966년 현재의 모습으로 재건됐다. 대전2리는 한때 부남면의 교육 중심지였다. 대전초등학교와 부남중학교, 부남고등학교가 모두 이곳에 자리했다. 현재 대전초와 부남중은 폐교가 됐지만 부남고는 청송자동차고등학교를 거쳐 지금은 경북골프경영고등학교로 바뀌었다. 대전초는 마을 주민 상당수가 어린 시절을 보낸 곳이어서 모교가 사라진데 대한 주민들의 아쉬움도 컸다. 폐교가 새로운 문화공간으로 바뀌게 된 계기는 바로 남관 화백이었다.

남관은 1911년 청송군 부남면 구천리에서 태어나 일본에서 미술을 공부한 뒤 1954년 프랑스로 건너가 활동했다. 고향에 대한 애정은 그의 작품에도 남아있다. 1951년 작 '고향의 노인들'은 청송 부남의 구천장터와 그곳 사람들을 담은 작품이다.
남관 탄생 100주년을 전후한 2011~2012년 서울과 대구, 청송 등에서는 그의 예술세계를 재조명하는 전시가 잇따라 열렸다. 2012년 청송자동차고등학교에서 열린 특별전에는 작품 110여 점과 관련 사료 50여 점이 전시되며 큰 관심을 모았다. 세계 화단에서 인정받은 남관이지만 우리나라에서는 상대적으로 덜 알려져 있는 편이었다. 특별전을 통해 남관의 예술세계를 고향에서 지속적으로 알릴 공간이 필요하다는 생각도 커졌다.

이러한 움직임이 본격화된 것은 2016년이다. 대전초를 다녔거나 졸업한 대전1·2리 주민 19명이 뜻을 모았다. 이들이 주목한 곳은 옛 대전초였다. 학교가 문을 닫은 뒤 비료 등을 쌓아두는 마을 공동창고로 활용하는 방안까지 거론됐던 곳이다. 주민들은 이곳을 남관을 기리는 공간이자 함께 이용하는 생활문화공간으로 만들자는 계획을 세웠다. 이들 가운데 조위래 씨는 이전부터 남관을 알리는데 각별한 관심을 쏟아왔다. 2009년 남관을 알리는 홈페이지를 직접 개설했고 한때 남관의 작품 220점과 관련 사료 3천여 점을 보유했을 정도로 남관에 대한 애정도 남달랐다.
주민들은 견학 비용을 직접 부담하며 다른 지역의 사례를 살피고 계획을 구체화했다. 오픈키친에서 음식을 만들어 마을 어르신들에게 대접하는 프로그램도 구상했다.

2018년에는 문화체육관광부 생활문화센터 공모사업에 도전했다. 주민들이 직접 사업안을 마련하고 공모를 준비했다. 현장을 찾은 실사단은 주민 주도의 준비과정을 높이 평가해 "최고다"라는 찬사를 보냈다고 한다. 이런 과정을 거쳐 2021년 3월 남관생활문화센터가 문을 열었다. 같은 해 8월에는 개관을 기념해 '고향에 돌아오다, NAMKWAN 청송의 특별한 이야기' 특별전이 열렸다.
전시에는 초기작인 '호박'(1945)을 비롯해 프랑스 활동기의 '파리에서'(1955), 귀국 후 작품인 '묵상'(1978) 등 작품 30여 점과 유물·사료 100여 점을 선보였다. 하지만 남관의 작품 대부분이 개인이나 외부에 소장돼 있어 센터에서 작품을 상설 전시하는 데는 어려움이 있었다.

청송·색채추상·군상·문자추상 등
다양한 주제로 미디어아트 선봬
별관 공예카페 '학교종이 땡땡땡'
문화·예술 향유 거점 역할 '톡톡'
이런 아쉬움을 달래기 위해 2023년 7월 센터 2층에 남관미디어아트홀이 문을 열었다. 미디어아트홀에 들어서면 남관의 생전 영상과 음성 자료를 토대로 만든 실사 홀로그램이 관람객을 맞이하고 남관의 작품세계를 따라 '청송', '색채추상', '군상', '문자추상' 등의 주제로 미디어아트가 이어진다.
고향 청송의 풍경을 담은 초기 작품에서 유럽 활동기의 색채추상, 두 차례 전쟁의 아픔을 담은 군상, 남관을 대표하는 문자추상까지 주제가 바뀔 때마다 남관의 작품들이 공간을 가득 채운다. 벽면에서 시작된 그림이 바닥까지 이어지면 관람객은 마치 남관의 작품 속 주인공이 된듯한 경험을 할 수 있다. 관람객이 작품 속 형상을 터치하고 그 움직임을 따라가는 인터랙티브 콘텐츠도 재미를 더한다.

센터의 나머지 공간은 대전2리 주민뿐 아니라 청송군민들의 문화활동에 활용되고 있다. 1층 기획전시관에서는 지역 작가와 지역 기관 등의 전시가 열리고, 음악연습실과 동아리체험실, 다목적실 등은 신청을 통해 이용할 수 있다.

올해는 '구석구석 문화가 있는 날' 사업을 통해 전통음식과 공예 체험, 인형극 공연 등 다양한 프로그램이 진행되고 있다. 운동장 곳곳에는 공공미술프로젝트를 통해 청송미술협회 작가들이 만든 벽화와 조각 작품들이 자리하고 있고 별관에는 공예카페 '학교종이 땡땡땡'도 있어 차를 마시며 쉬어갈 수도 있다.

대전2리 주민들에게 남관생활문화센터는 남다른 공간이다. 모교가 세계적인 화가 남관을 알리는 문화공간으로 재탄생한 데 대한 자부심도 크다. 앞으로 대전2리가 남관의 예술을 마을 곳곳에서 만날 수 있는 '남관미술마을'로 발전했으면 한다는 바람도 있다. 4천190명의 졸업생을 배출했던 대전초는 남관생활문화센터라는 이름으로 마을 사람들의 곁에서 새로운 역할을 하고 있다. 학생들이 떠난 학교에는 문화와 예술을 배우고 즐기려는 주민들의 발길이 이어지고 있다.
윤성균·배수경기자
<우리 마을은>

정동채 이장 "서로 의지하고 함께 잘사는 마을이 되었으면"
"우리 마을이 잘사는 마을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돈이 많다고 해서 잘사는 마을이 아니고 주민들이 서로 화합하면서 잘사는 마을이 되기를 바랍니다"
청송군 부남면 대전2리 정동채 이장이 바라는 마을의 모습은 소박하다. 대전2리에서 태어나고 자란 정 이장은 사과와 고추농사를 짓는다. 이장직을 맡은지도 벌써 12년째다. "마을에 젊은 사람이 없다보니 계속하게 됐다"며 웃는 그는 오랫동안 이장을 맡아온 만큼 마을의 크고 작은 일은 물론 주민 한 사람 한 사람의 사정에도 밝다.
정 이장이 가장 신경 쓰는 것은 주민 간 화합과 어르신들을 살피는 일이다. 마을에서 오랫동안 살아온 주민은 물론 새로 들어온 귀농·귀촌인들이 자연스럽게 어울릴 수 있도록 챙기고 고령의 어르신들은 직접 찾아가 안부를 살핀다. 해마다 경로잔치와 단체 나들이도 마련한다. 올해 4월에는 어르신들을 모시고 강원도 삼척으로 나들이를 다녀왔다. 평소 먼 곳으로 나가기 쉽지 않은 어르신들이 모처럼 함께 여행하며 즐거워하는 모습을 볼 때 이장으로서 보람도 크다고 했다. 마을에 일이 생기면 주민들이 함께 나서고 각종 행사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것이 대전2리의 장점이라고 정 이장은 말한다.
정 이장에게 남관생활문화센터가 들어선 옛 대전초등학교는 더욱 특별하다. 대전초 33회 졸업생인 그는 모교가 폐교됐을 때는 씁쓸한 마음이 들었지만 남관생활문화센터로 재탄생해 주민과 청송군민들이 이용하는 문화공간이 된 것이 반갑다고 한다. 세계적인 화가 남관이 청송 출신이라는 사실과 그의 이름을 딴 문화공간이 마을에 있다는 데 대한 자부심도 크다.

오랫동안 마을을 지켜본 정 이장의 가장 큰 걱정은 고령화와 인구 감소다. 마을에서 아이 울음소리를 듣지 못한 지도 오래됐다. 교통 여건이 좋아지면서 귀농·귀촌인이 들어오고는 있지만 마을을 이어갈 젊은 사람이 많지 않은 것이 현실이다. 그럴수록 정 이장은 주민들이 서로 의지하며 살아가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마을사람들이 서로 얼굴을 보면서 즐겁게 지내는 게 중요하지요. 주민들이 서로 화합하고 어르신들도 건강하게 오래오래 함께 잘사는 마을이 됐으면 좋겠습니다."
배수경기자 micbae@idaegu.co.kr
<가볼만한 곳>

◇산소카페 청송정원…드넓은 정원 형형색색 꽃잔치
산소카페 청송정원은 청송군 파천면 신기리에 조성된 대규모 정원형 관광지다. 13만8천㎡ 규모의 드넓은 정원은 계절마다 다른 꽃으로 옷을 갈아입는다. 봄에는 붉은 꽃양귀비와 노란 금영화가 피고, 가을이면 형형색색의 백일홍이 넓은 들판을 수놓는다. 빨강과 분홍, 노랑 등 알록달록한 백일홍 사이로 산책길이 이어지고 곳곳에는 예쁜 사진을 남길 수 있는 다양한 포토존이 마련돼 있다.
정원 가운데 자리한 전망대에 오르면 넓게 펼쳐진 꽃밭을 한 눈에 내려다 볼 수 있다. 맨발걷기를 하면서 꽃과 풍경을 즐길 수도 있다. 버스킹 공연 등 다양한 프로그램도 운영된다. 9월 1일부터 문을 연 백일홍 단지는 오는 11월까지 무료로 개방된다.
출처: 대구신문 원문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