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송 덕천마을

“느림이 좋아”…전통테마마을 거듭난 청송 심씨 본향

군민과 함께하는 행복청송

청송 덕천마을

▲덕천마을에는 청송 심부자의 7대손 송소 심호택이 건립한 99칸 송소고택을 비롯해 찰방공종택, 송정고택 등 많은 고택들이 있다. 덕천마을은 이를 기반으로 고택숙박체험 및 다양한 슬로시티 체험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심부자 7대손이 세운 99칸 저택
후기 상류층 주택 특징 보존 관리
송소고택·초전댁·칠방공종택…
국가·경북문화재자료 지정 다수
게감정·콩가루국 등 이색 전통식
마을회관 인근 식당서 취식 가능

청송군 파천면 덕천리는 파천면의 중남부에 있는 지역으로 행정리는 덕천1 · 2 · 3리 등 세 개로 이루어져 있다. 이 가운데 덕천 1리가 청송 심씨의 본향이라고 하는 덕천마을이다. 덕천리라는 지명은 마을 앞에 덕천이라는 하천이 흘러 붙여진 이름이라 하나 덕천에 대해서 자세히 알려진 바는 없다. 덕천리는 본래 청송군 부서면의 지역이었으나, 1914년 행정구역 폐합에 따라 부서면의 상리, 하덕천, 이사리를 병합하여 덕천동이라 하고 파천면에 편입되었으며, 1988년에 군조례에 의해 덕천리로 개칭되었다.
덕천리의 자연환경은 동쪽은 덕리, 서쪽은 지경리, 남쪽은 신흥리, 북쪽은 중평리, 북동쪽은 관리, 북서쪽은 병부리와 접하고 있는데, 서쪽 병부리의 사일산에서 동쪽으로 뻗어 내린 산줄기가 덕천리를 감싸고 있고, 동부는 남쪽에서 흘러내려 온 신흥천이 관리와 중평리의 경계 지점에서 용전천으로 유입된다.

경북에서 영양 · 봉화지역과 더불어 오지로 알려진 청송군은 당진영덕고속도로의 개통과 더불어 접근성이 획기적으로 좋아졌으며, 특히 덕천리는 인접한 중평리에 당진영덕고속도로의 청송 나들목이 있고, 마을 동쪽을 흐르는 신흥천을 따라 군도 17호선이 통과하고, 인근에서 지방도 914호선과 교차하며, 북쪽 관리에서 국도 31호선으로 연결되어 청송군 내에서 외부 접근성이 가장 양호한 마을로 많은 관광객들이 찾아오고 있다.

덕천1리 덕천마을은 조선후기 인문지리서인 이중환의 택리지에도 심촌이라고 할 만큼, 청송 심씨의 본향으로 잘 알려져 있다. 마을 입구에 있는 덕천마을 소개 현판에도 조선이 개국할 당시 조선건국에 협조한 형 덕부(세종의 비 소헌왕후의 할아버지)와 달리 ‘불사이군’의 신념하에 두문동으로 들어간 악은공 휘 원부의 후손들이 악은공의 가르침에 따라 풍광 좋은 덕천에 터를 잡고 600년 동안 대대로 뿌리내리며 살고 있는 마을로 소개하고 있다.

마을 내에는 조선시대 12대 만석꾼인 경주 최부자와 함께 9대에 걸쳐 250여 년간 만석의 부를 누렸던 청송 심부자의 7대손 송소 심호택이 건립한 99칸 저택으로 ‘2011년 한국 관광의 별 체험형 숙박시설’로 선정된 송소고택을 비롯하여, 초전댁, 찰방공종택, 송정고택, 창실고택, 세덕사, 벽절정, 소류정, 학산정, 경의재, 요동재사 등 국가지정 중요 민속자료 및 경상북도문화재자료 등으로 지정된 많은 고택들이 있다.

이를 기반으로 덕천마을은 2005년 농촌진흥청의 농촌 전통 테마 마을로 지정되었으며, 2011년에는 ‘국내 농어촌관광명소 20곳’으로 선정되었고, 2016년 농림축산식품부와 한국농어촌공사의 ‘숨은 명소가 있는 농촌관광코스 10선’에, 2017년에는 농촌진흥청이 발표한 ‘가을 농촌 걷는 길 4선’에도 선정되는 등 슬로시티 청송을 대표하는 고택 숙박 체험 및 슬로시티 체험 프로그램이 잘 갖추어진 문화 민속마을이다.

덕천마을을 가기위해 신흥천 경의교를 건너면 고택체험 숙박객과 주민을 제외하고는 마을 내부로의 차량 출입을 금지라는 안내 현수막이 있는 넓은 주차장과 함께 오른쪽에는 악은공 심원부를 추모하는 신도비와 경의재가 있다. 마을 안으로 이어지는 왼쪽으로는 걸어서 마을로 갈 수 있는 운치 있는 수목터널과 함께 나란히 차량진입로가 있다. 마을 안 입구에 들어서면 청송 심씨의 본향이라는 큰 입석과 함께 청송 심씨 6세조인 석촌공 효상이 동생인 만우공 효연을 고향으로 돌려보내면서 남긴 시환거청송이라는 시비와 덕천마을이 청송 심씨의 본향이 된 내역을 상세히 소개하는 입석이 있다.

마을 입구에서 마을 안을 바라보면 전형적인 배산임수 형태의 가옥들이 넓게 펼쳐져 있어 마을의 규모가 작지 않음을 짐작하게 한다. 특이한 점은 어느 농촌에서나 쉽게 볼 수 있는 전신주가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다. 이는 지난 2002년 지중화작업을 통해 전신주를 없앴기 때문인데 이로 인해 마을 어느 곳에서나 장애물 없이 마을 전경을 시원하게 조망할 수 있다.

▲송소고택.

압화는 이름 그대로 눌러서 말린 꽃이다. 누름꽃, 혹은 프레스드플라워라고도 부른다. 이렇게 말린 꽃은 다양한 공예품의 재료가 돼 예술작품으로 탄생한다. 압화라고 부르지만 사실 꽃에만 한정되는 개념은 아니다. 꽃은 물론, 잎, 줄기, 뿌리, 그리고 열매까지 눌러서 말린 모든 식물들을 다 포함한다.

압화라는 용어 자체는 생소하게 들릴 수 있지만 압화는 오래 전부터 우리의 삶 속에 자리잡고 있었다. 과거 우리 조상들은 방문이나 창에 창호지를 바를 때 단풍이나 국화잎을 덧발라 꾸며놓았다. 이렇게 해놓으면 보기에도 예쁘지만 문고리가 있는 부분을 쉽게 찢어지지 않게 단단하게 만들거나 구멍이 난 문종이를 메워주는 실용성도 있었다. 곱게 발라놓은 국화잎은 세균을 막아주는 효능도 있었다고 한다.

오랜 과거로 거슬러가지 않더라도 학창시절에 누구나 한번쯤은 예쁘게 물든 은행잎이나 단풍잎을 주워들어 책갈피에 꽂아두었던 기억이 있을 것이다. 한참을 쪼그리고 앉아 찾아낸 네잎클로버는 두꺼운 사전 속 어디엔가에 자리잡기도 했다. 시간이 흘러 책장 사이에서 바삭하게 잘 마른 클로버나 나뭇잎을 예쁜 글귀와 함께 코팅해서 선물하는 것이 유행처럼 여겨지던 때도 있었다.

▲찰방공종택

덕천마을은 농촌 전통 테마 마을로 마을에 있는 여러 고택들에서 숙박과 함께 다양한 체험을 할 수 있는데 가장 대표적인 가옥은 송소고택이다. 송소고택은 청송 심씨 9대 만석꾼의 시대를 연 심처대의 7대손 송소심호택이 1880년(고종 17) 파천면 지경리에서 조상의 본거지인 덕천리로 이거하면서 건축한 99칸 가옥으로 국가민속문화재 제250호로 지정되어 있다. 건물마다 독립된 마당으로 공간이 구분되어 있는 등 조선후기 상류층 주택의 특징을 잘 간직하고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이외에도 1806년에 건립된 경상북도 문화재자료 제421호 초전댁, 1914년에 건립된 심호택의 차남인 송정 심상광의 살림집인 송정고택, 1917년 건립된 창실고택, 1933년에 건립된 청송군 향토유형문화유산 제13호 찰방공종택 등에서 각기 다른 고택체험을 할 수 있다. 또한 10명이상이 신청할 경우 염색, 예절, 도자기 민화 등등 각종 체험활동도 실시하고 있다.

덕천마을에는 조선 영조 시기 만석의 부를 누렸다는 청송 심씨 집안의 전통 음식이 있다. 이 상차림에는 ‘게바가지’ 된장찌개로 불리는 게감정, 떡갈비와 비슷한 장산적과 섭산적, 제철 나물을 콩가루에 무쳐 멸치육수로 끓여낸 콩가루국 등이 주요 요리이다. 그러나 현재 각 고택에서 일일이 숙박객들에게 음식을 제공하기 힘들어 마을회관 인근에 ‘심부자 밥상’이라는 식당을 마련하고, 필요한 손님들이 이용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이외에도 덕천마을에는 다른 마을에서 쉽게 볼 수 없는 색다른 입석이 있는데 바로 ‘마을터 돌’이다. 주민들이 2002년에 세운 것으로 기록된 입석의 내용을 보면 ‘양반가 마을로 예의바르고 인심 좋고 살기 좋은 마을이며, 과거에 비해 주민 수는 많이 줄었으나 마을은 영원히 존속할 것이고, 사람은 누구나 불완전하여 작은 실수와 오해가 있을 수 있으나 반성하여 용서를 구하고 이해하며 양보하여 서로 간에 불편하지 않도록 최선을 다하면 서로가 즐겁고 행복하게 살게 될 것이므로 후손 만대에 이 뜻을 길이 이어 살아가길 바란다는 뜻에서 마을터 돌을 세운다’고 되어 있다. 어떤 연유로 세워졌는지는 알 수 없으나 참으로 흥미롭다.

윤성균기자·이석형 객원논설위원

▲송정고택

우리 마을은

김순한 이장

지붕, 돌담길 정비 끝나면 '민속마을' 지정 추진...

40여 년 전 안동 구담에서 덕천마을 찰방공 종가로 시집온 김순한 이장은 종갓집 살림이 얼마나 힘든 것인지도 모른 채, 단지 신랑의 직업이 안정적인 공직에 있다는 것 하나 보고 시집 왔다면서 웃음을 지었다. 다행히 인자하신 시부모님 덕에 종갓집 며느리로서 큰 어려움은 없었다고 한다. 그동안 자녀 교육 때문에 5년 정도 외지에 나가 살았으나 자식들이 대학에 진학한 후에는 다시 마을로 돌아와 종가를 지키면서, 이장직을 맡아 봉사한지도 어언 10년이 되었다고 한다.

도시지역에서는 흔한 일이지만 농촌지역에서는 흔치 않은 일이기에 경상도 반가에서 여성으로서 어떻게 이장 직을 맡게 되었느냐고 물었을 때 김순한 이장은 집성촌이라 여성이 오히려 주민들 간의 갈등을 해소하는 데는 더 도움이 된다고 한다.

찰방공종택의 안주인인 김순한 이장의 집안에 들어서면 제일먼저 경상도의 일반 종가에서는 찾아보기 힘든 종손과 종부의 이름이 나란히 새겨진 문패가 눈에 띤다.

그리고 풀 한포기 없이 깨끗하게 정리된 마당과 갖가지 꽃들로 가득찬 아담하고 정갈한 정원, 벌레 먹은 흔적 하나 없는 각종 채소들로 가득찬 텃밭이 김 이장의 성품을 한마디로 보여주고 있는 것 같다.

현재 덕천마을의 고택과 더불어 관광객들에 의해 SNS에 덕천마을 핫 플레이스로 소개되고 있는 카페 백일홍이 있다. 이 카페는 김순한 이장이 송소고택 앞마을의 빈 한옥을 깔끔하게 수리해 주는 조건으로 10년간 무상으로 사용하기로 하고, 한옥 그대로의 정취를 살린 채 수리한 후 다시 도자기를 전공하는 사람에게 임대하여 문을 연 카페이다.

현재 마을기금은 임대소득과 더불어 고택체험을 통해 얻는 수익의 일정부분을 기금으로 적립하여 상당한 수준에 이른다고 한다.

마을의 인구는 한때 900여명에서 도시화로 젊은이들이 도시로 나가 70가구에 100여명에 불과하지만, 퇴직 후 귀촌하는 사람들이 나날이 늘어나고 있다고 한다.

김 이장은 이들이 새로운 집을 건립할 때는 가능한 한옥으로 건축하도록 권유하고 있다고 하면서, 덕천마을은 2012년 휴양마을로 지정되어 있는데 이를 민속마을로 변경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한다.

김이장은 최근 코로나로 인하여 고택에서의 숙박체험을 제외하고는 다른 체험활동을 실시하지 못하고 있지만, 주민들이 생산한 농산물을 저렴한 가격에 무인판매를 하고 있고, 시니어 일자리가 많이 생겨 주민들의 소득 창출에 일정부분 기여하고 있다고 한다.

김 이장은 다만 덕천마을이 민속마을로 거듭나게 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지붕과 돌담길 같은 마을의 환경정비가 절실하다고 하였다. 특히 과거 지붕개량사업을 하면서 오늘날 발암물질로 인해 문제가 되고 있는 슬레이트 지붕을 철거하지 않고 그 위에 그냥 함석이나 기와로 덧씌운 경우가 많아 이를 해결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하였다.

우리 마을 소개 영상

가볼만 한 곳

유네스코 세계지질공원 지정

주산지...150년 왕버들 자생군락지

<주산지>

150년 된 왕버들 자생군락으로 유명한 주산지는 주왕산국립공원에 포함되며, 주산지 일원은 명승 제105호로 지정되어 있다. 사계절 많은 관광객들이 찾는 관광 명소이다.

청송 유네스코 세계지질공원으로 등재된 24개 명소 가운데 청송얼음골, 달기약수탕과 함께 수리명소에 해당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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