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성 윤이실마을

“미래 세대 위해” 번거로워도 친환경 농법 고집

활력 넘치는 희망의성

의성 윤이실마을

의성군 북부에 자리잡고 있는 점곡면은 지역의 대부분이 160~500m의 구릉성 산지로 북쪽으로는 안동과 접하고 있다. 점곡면 윤이실마을은 나즈막한 와우산 자락을 바라보고 있는 전형적인 농촌마을이다. 영양 남씨 집성촌인 윤이실마을은 행정구역상으로는 윤암 2리로 윤곡, 혹은 윤실이라고도 불린다. 1652년경 남해준과 그의 아들 남몽뢰가 점곡면 월촌에서 살다가 이 마을로 이주해 대대로 살면서 영양 남씨 마을로 번성했다고 전해진다.

▲경영양 남씨 집성촌인 윤이실마을은 화학비료나 농약을 쓰지않는 친환경농법으로 농사를 짓는다. 마을에는 서계당, 이계당, 소계당 등 가문의 고택들이 경상북도 문화재자료로 지정되어 있다.  <전영호기자 riki17@idaegu.co.kr>

제초제 대신 천연 병충해방지제
먹성 좋은 왕우렁이로 벼농사
영농조합법인 청암공동체 통해
농산물 전량 한살림으로 납품

▲마을의 입향시조인 남몽뢰가 학문을 닦던 서재 이계당.

예전에는 하루에 버스가 한 두번만 지나다니는 오지였지만 지금은 의성읍에서 914번 국도를 따라 가다보면 바로 마을 입구에 닿을 수 있다. 마을 어귀에 자리한 소계당을 지나 오른쪽으로 보이는 자그마한 개천을 지나면 윤암 2리 경로당이 제일 먼저 반겨준다. 그 앞쪽으로 조선 중기 광해군 때의 문신이자 학자인 이계 남몽뢰가 강학하던 서재인 이계당이 있다. 전면에 대청마루를 배치하고 뒤쪽으로 온돌방이 있는 비교적 작은 규모의 이계당은 4,50년전만 해도 여름이면 마을 어린이들의 단골 피서장소이기도 했다. 마루에 서서 바깥을 내다보면 소개천이 한눈에 들어오고 수령 300년이 넘는 회화나무가 그늘을 드리워주고 있어 더위를 피하기엔 이보다 더한 곳이 없었다고 한다. 이계당 앞에 흐르는 소개천에서 물놀이를 하고 자두 서리도 하고 마루와 마당에 자리를 깔고 함께 어울려 잠을 자던 추억의 장소이기도 하다. 경북 문화재자료 제 443호로 지정되면서 지금은 보존을 위해 문이 닫혀있다. 마을 곳곳에 보이는 마늘 저장고가 이곳의 주요농산물이 의성마늘임을 알 수 있게 한다.

윤이실마을은 마늘뿐 아니라 사과, 고추, 쌀, 양파 등 다양한 작물을 재배하는 복합농들이 많다. 겉으로 보기에 평범해 보이는 윤이실마을이 특별한 이유는 이 마을의 농산물들이 화학비료나 농약을 쓰지않는 친환경농법으로 재배되기 때문이다.

30여년 전 마을의 몇몇 농가들이 무농약으로 농사를 짓기 시작했을 때는 ‘편한 길을 놔두고 왜 어렵게 농사를 짓느냐’는 시선도 많았다. 유기농법은 한 두 농가만 화학비료나 농약을 쓰지 않는다고해서 가능한게 아니라 전체 마을이 뜻을 함께 해야 진정한 의미의 친환경 농산물을 생산할 수 있다. 농약이나 화학비료는 생산력을 높이고 일손을 더는데는 효과적이지만 결국에는 자연을 병들게 하고 그 피해는 고스란히 사람들에게 돌아온다. 당장의 편리함보다 다음 세대를 생각해 결단을 내리는 주민들이 하나둘씩 늘어나며 90년대 후반에 이르러서는 대부분의 마을주민들이 무농약, 친환경농법으로 전환을 했다.

▲영농조합법인 청암공동체.

2008년 도농교류체험관 건립
어린이·성인에 농촌 체험 제공
연간 체험객 최대 1천명 ‘인기’

▲청암공동체에서는 ‘어린이 생명학교’를 열어 모내기 등 농사체험을 진행하기도 한다. 

유기농법은 해충과 잡초와의 싸움이라도 해도 과언이 아니다. 게다가 수확량도 줄어들고 때론 겉보기에 반듯해 보이는 작물도 포기해야 된다. 처음 마을을 들어설 때 깔끔하게 정리되어 있지 않은듯 보였던 논과 밭의 풍경이 그제서야 이해가 간다. 간단하게 제초제를 뿌리면 무성한 풀들이 금방 사라진다는 것을 알고 있으니 유혹을 뿌리치는 것이 쉽지는 않았다고 한다. “이왕이면 건강한 먹거리를 생산해보자”는 마을 주민의 공통된 사명감으로 직접 풀을 뽑고 돼지감자, 자리공 등을 달여 만든 천연 병충해방지제를 뿌리는 수고로움을 기꺼이 감수한다.

덕분에 마을주민의 하루는 일찍 시작된다. 요즘같은 무더위에는 새벽 3시경부터 일어나서 4시면 본격적으로 일을 시작해 해가 많이 뜨거워지기 전인 오전 9시까지 일을 한다. 그리고 대낮에는 잠시 휴식을 취하고 오후 5시부터 다시 논과 밭으로 나간다.

벼농사는 우렁이 농법으로 짓는다. 모를 심고 3일에서 1주일 뒤 우렁이를 논에 집어 넣으면 따로 제초제를 치지 않아도 우렁이가 잡초들을 뜯어먹는다. 이때 토종 우렁이 대신 풀을 많이 먹는 열대산 왕우렁이를 활용한다. 우렁이 농법으로 키운 벼는 병해충 대항력도 높아지는 것으로 알려져있다.

아무리 좋은 농산물이 있어도 판로가 없으면 무용지물이다. 윤이실마을은 그런 면에서는 운이 좋다. 마을에서 생산되는 마늘, 사과, 쌀, 복숭아, 자두 등 유기농작물은 영농조합법인인 청암공동체를 통해 한살림으로 전량 납품이 된다.

청암공동체는 윤암 1·2리의 30여 농가가 참여하고 있는 유기농작목반으로 한살림의 생산자협동조합 중 가장 큰 규모다. 2008년 ‘경상북도 부자마을만들기’ 사업에 선정되어 도농교류체험관을 건립한 청암공동체는 한살림소비자협동조합원 자녀들을 대상으로 ‘어린이 생명학교’를 열기도 한다. 보통 2박 3일동안 진행되는 행사는 계절에 따라 모내기와 논에 우렁이 넣어주기, 마늘종 뽑기, 벼베기 등의 농사체험과 별보기, 밤마실 걷기 등 도시에서는 경험할 수 없는 다양한 체험프로그램으로 진행된다. 일정의 마지막 날에는 마을주민들의 집을 방문해 함께 음식을 만들어 먹으며 농촌의 정취를 느끼는 시간도 갖는다. 처음에는 휴대폰 등 디지털 기기를 쓰지 못해 답답해하던 어린이들이 행사가 끝나고 나면 ‘외갓집에 온 것 같았다. 너무 감사하다’, ‘너무 재미있었다. 또 오고 싶다’는 편지를 두고 가기도 한다.

귀농에 관심이 있거나 안전한 먹거리에 관심이 있는 어른들을 대상으로 1박 2일 프로그램을 진행해 친환경농법과 농산물에 대한 이해를 높이는 시도도 한다. 농촌의 현실과 유기농법의 어려움 등을 토로하다보면 밤을 새기 일쑤다. 체험객이 연간 800명에서 1천명에 이를 정도로 인기를 끌던 프로그램은 최근 코로나19로 인해 잠정적으로 중단된 상태다.

1800년 경 지어진 ‘소계당’
조선 영남지방 주택 연구 활용
420년 넘은 왕버드나무 반가워
남몽뢰가 학문을 닦던 ‘이계당’

윤이실마을에는 경상북도 문화재자료로 지정된 가옥들이 여러 채 있다. 마을 어귀에 자리잡고 있는 소계당은 경상북도 문화재자료 376호로 1800년 경에 남정기가 건립했다고 전해진다. 앞쪽의 사랑채는 건물 가운데 나있는 중문을 중심으로 왼쪽은 집안의 남자 웃어른인 할아버지가 거처하는 큰사랑이고 오른쪽은 아들이나 손자가 거처하는 작은 사랑이다. 큰사랑과 작은 사랑의 지붕도 팔작지붕과 맞배지붕으로 다르다. 영남 지방 양반들이 살던 집의 일반적인 모습을 갖추고 있어 조선시대 영남 지방의 주택을 연구하는 자료로 가치가 있다. 소계당 앞에는 어른 서너명이 팔을 벌려 안아도 버거울 정도로 큰 왕버드나무가 자리잡고 있다. 420년이 훌쩍 넘은 나무다. 이곳은 현재 후손이 거주하고 있으니 불쑥 문을 열고 둘러보는 일은 피하는게 좋다.

길 건너쪽으로는 1800년 말 남용진이 세웠고 그 손자인 남몽욱이 증축했다고 전해지는 서계당(문화재자료 제 377호)이 있다. 간략하고 소박하게 지어진 집은 옛날 하인들이 살던 작은 초가와 방앗간, 우물 등이 남아있어 당시의 생활사를 연구하는데 귀중한 자료이다.

현재 마을 주민은 28가구에 34명 정도다. 평균연령이 65세 정도로 여느 농촌마을과 마찬가지로 고령화에 접어들어 젊은 귀농귀촌인의 유입이 필요한 상황이다.

김병태·배수경기자

소계당 앞 왕버드나무는 수령 420년이 넘는다.

1800년 경에 남정기가 건립한 소계당.

우리 마을은

남흥곤 윤이실마을 이장

“유기농에 뜻있는 귀농귀촌인 유입되길”

마을에서 나고 자란 남흥곤 이장은 군대를 제대하고 도시에서 직장생활을 하다 30대 후반에 다시 고향으로 돌아와 20년째 이곳을 지키고 있다. “집성촌이라 28가구 중 2/3정도가 영양 남씨입니다. 대부분의 마을 주민들이 10촌 이내라 아무래도 단합이 잘되는 것이 장점이죠. 다들 아재, 형님이니 마을 대청소나 풀 뽑기를 비롯해 대소사가 있으면 모두들 열일 제치고 달려나오거든요.”

고향으로 돌아온후 16년째 이장을 맡고 있는 남 이장은 농촌마을이면 어디나 겪고 있는 노령화에 대한 고민이 많다. “젊은 귀농귀촌인들이 마을로 많이 들어오기를 바랍니다. 그런데 문제는 친환경농법에 뜻을 같이 하는 젊은이들을 찾는게 쉽지는 않습니다. 마을주민들과도 잘 어우러지고 유기농에 대한 사명감도 있는 젊은이들 어디 없나요?”

그는 윤이실마을에서 생산하는 먹거리에 대한 자부심이 대단하다. 지금은 마을 주민들 대부분이 유기농으로 재배한 농산물을 판매하는 1차 산업에 주력하고 있지만 앞으로는 건강한 먹거리를 가공해 마늘고추장 등 다양한 상품들도 만들어 볼 계획을 갖고 있다.

우리 마을 소개 영상

가볼만 한 곳

사촌리 가로숲...500여그루가 만든 방품림

<사촌리 가로숲>

고려말 안동 김씨인 김자첨이 사촌으로 이주해오면서 마을 서쪽에서 불어오는 바람을 막기 위해 조성한 방풍림이다. 수령이 300~600년에 이르는 500여 그루의 아름드리 느티나무, 팽나무, 상수리 나무들이 아름다운 풍광을 만들어 내고 있다. 1592년 서애 유성룡의 어머니가 친정인 사촌에 왔다가 이 숲에서 유성룡을 출산했다는 전설도 전해져 내려온다. 길이가 1km에 이르는 사촌리 가로숲은 천연기념물 제 405호로 지정되어 있다.

고운사...681년 의상대사가 창건한 절

<고운사>

‘구름을 타고 오른다’는 등운산 자락에 자리한 고운사는 신라 신문왕(681년)때 화엄종의 시조인 의상대사가 창건했다. 신라 최고의 지성이라 일컬어지는 최치원이 가온루와 우화루를 지었다고 전해진다. 원래 이름은 높은 구름을 뜻하는 고운사였으나 최치원의 호를 따서 ‘고독한 구름’ 고운사가 되었다. 도선국사가 조성한 석조석가여래좌상(보물 제 246호)과 가운루, 삼층석탑, 연수전이 문화재로 지정되어 있다.

우리마을 지역 특산물

우리 마을에서 특별히 생산되는 신선하고, 고품격의 지역 물품을 소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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